
야구 선수에게 추석은 다른 세상 이야기에 가깝다. 빠르면 9월 중순 늦어도 10월 초,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일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
‘소년 장사’에서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SSG 최정(38)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아들 한호 군이, 올해는 딸 하영 양이 경기 전 시구를 할 만큼 훌쩍 자랐지만 아이들과 추석을 명절처럼 보낸 기억은 아직 없다. 어쩌다 홈 경기가 겹치면 아빠 보러 온 아이들과 경기장에서 인사를 나누는 정도다.
추석을 앞둔 최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최정은 ‘추석하면 떠오르는 추억 같은 거라도 있느냐’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최정은 “추석보다도 결혼하고 처음 맞은 설이 생각난다. 저는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와이프 혼자 저희 부모님 집에도 가고 친척분들도 다 인사드리러 다녔다고 하더라. 지금이면 제가 말렸을 텐데 그때는 서로 잘 몰랐고 어렵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내한테 많이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다 싶다”고 했다.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추석을 앞두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던 기억이 있지만, 야구를 시작하면서는 없는 일이 됐다. 최정이 여유로운 명절을 보내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요리라도 해줄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최정은 “지금은 할 줄 아는 요리가 사실 없지만 잘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칼질은 할 줄 아느냐는 말에 “그건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요리를 잘하겠느냐고 했더니 최정은 “제가 간은 정말 잘 본다. 요리는 간을 잘 맞추는 게 기본 아니냐. 요리를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맛있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최정으로 성장했으니, 요리에도 그런 자신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졸 신인으로 프로 첫 발을 디뎠던 2005년만 해도 최정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불과했다. 수비에서 특히 약점이 많았다. 그러나 최정은 김성근 전 감독이 ‘대단하다’고 할 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최정은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하루 그렇게 훈련하고 나면 다음날 스윙이 좀더 날카로워지고 수비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매일 야구장 나가는게 설레고 신났다”고 20년 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지금은 ‘텐션’을 매일 끌어올리고 유지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더 하고 있다. 일부러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야구 말고 뭔가 가슴 설레는 일을 생각하면서 경기를 준비한다”고 했다.

사실 최정이 가족과 정말 함께 해보고 싶은 건 ‘여름 여행’이다. 지금까지는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 최정은 “사실 겨울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눈도 별로 안 좋아한다. 여름을 좋아한다. 초록 빛깔 풍경이 좋다”면서 “겨울 비시즌 때는 한번씩 짬을 내서 가족 여행도 가는데, 여름은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여름 여행 역시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최정은 올 시즌을 앞두고 4년 총액 110억원 FA 계약을 새로 맺었다. 평생 처음 겪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었고, 예년보다 부침도 심하게 겪었지만 여전한 홈런 생산성을 과시했다. KBO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500홈런 고지를 넘었고, 지난달 11일에는 10년 연속 20홈런으로 종전 박병호의 9년 연속을 넘어 새 기록을 세웠다. 기량은 여전하고, 야구할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최정은 “지도자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서, 선수로 은퇴를 해도 결국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프로 입단 후 거의 매년, 최정은 그라운드 위에서 추석을 보냈다.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추석 당일 경기에서 통산 타율 0.441(34타수 15안타)를 기록할 만큼 강했다. 지난해에도 추석 당일이던 9월17일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를 때렸다. 정작 최정은 “빨간날 낮 경기는 컨디션 조절하는 게 힘들어서 별로 안 좋아했다”고 했다.
‘다행히’ 올해 최정은 추석 경기가 없다. SSG가 시즌 3위를 확정하면서 추석 당일인 오는 6일 예정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피했다. 최정은 인천에서 8일 예정인 준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