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위독한 산모에 대한 응급 임신중지 수술을 가능하게 한 전 정부의 조치를 철회했다.

3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는 의료적으로 위급 상황에 처한 임산부에게 필요한 경우 응급 임신중지술을 제공할 수 있게 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서비스센터(CMS)는 해당 지침의 철회를 발표하며 “이전 행정부의 조치로 인해 발생한 법적 혼란과 불안정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임신한 여성이 위급한 상황에 있을 때 임신중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응급 임신중지 수술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직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해당 지침 발표 이후 임신중지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주법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호주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의 이 지침은 연방법인 응급 의료 치료 및 적극적 노동법(EMTALA)에 근거해 내려졌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미국의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의 기금을 받는 모든 병원의 응급실이 환자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와 관계없이 응급 환자의 건강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검사 및 치료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건강법 전문가인 로렌스 고스틴은 뉴욕타임스(NYT)에 “이 법(EMTALA)이 임신중지를 구체적으로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 이후 행정부들이 이 법을 그렇게 해석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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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을 두고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임신중지권 옹호 단체인 재생산권센터 대표 낸시 노섭은 “트럼프 행정부는 여성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임신중지술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응급실에서 죽기를 원한다”며 “이 지침의 철회는 임신중지가 이미 금지된 병원에 존재하는 공포와 혼란을 더 조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산부인과 의사협회는 “해당 지침을 철회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후 임신중지와 관련한 진료와 수술 등을 거부당한 여성 최소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단체에 자금 지원을 제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임신중지 서비스 또는 상담을 제공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중단됐다. 첫 번째 임기 당시 임신중지 서비스를 차단하는 정책을 줄줄이 내놓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하자 미국 내에서는 사후피임약과 먹는 임신중지약인 미페프리스톤의 주문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단체인 구트마허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50개주 중 13개 주에서 임신중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 배시은 기자 sieunb@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