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분식(粉飾)’이라 한다. 예를 들면 기업이 주가를 높이거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계산하여 재무 상태나 경영 성과 등을 고의로 조작하는 것을 ‘분식회계(粉飾會計)’라 할 때 ‘분식(粉飾)’이 그것이다. 즉 왜곡하거나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사용되는 분장이나 덧칠을 말한다.
1970~1980년대 우리 사회 집권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였다. 유신체제 출범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제안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분식(粉飾)’된 권위주의’의 결정판이었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민주주의 앞에 다른 말을 붙인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말씀을 나중에 성장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3선 개헌을 통해 1971년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후 박정희는 그해 12월 북한의 무력도발과 안보 위기를 명분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언론 등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또한 야당의 당리당략이나 언론의 무책임으로 안보 위기가 발생했다고, 1972년에는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며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이후 그는 선거제도가 지역감정과 민족분열을 조장한다며 선거제도는 물론 민주주의 전체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때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지금 세계 10위권 OECD국가 대한민국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런 징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헌법에 명시된 우리나라 국호를 ‘대한민국’이 아닌 ‘자유 대한민국’으로 바꾸어 불렀다. 국호에 ‘분식(粉飾)’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가 야당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북한의 위협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었다거나, 심지어 전단과 포사격에 무인기까지 아무리 자극해도 북한 응하지 않자 이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50여 년 전의 주장과 너무나도 똑같다.
윤석열은 수없이 ‘자유’의 가치에 대하여 강조하며, ‘가치 외교’를 최고의 치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자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분식(粉飾)’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이 이번 계엄을 통해 밝혀졌다. 지금까지 온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켜 놓은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국제사회 비웃음거리, 부끄러운 후진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활한 대통령은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세상과 사회에 무관심하다 여겼던 20, 30세대가 계엄을 막아내는데 앞장섰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로 폭력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여러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 일부 첨단 과학기술이나 한류 등에서는 글로벌 리더가 되었다. 새해에는 정치에서도 새로운 한류를 꿈꾸며 이들이 펼쳐갈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