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임이 참 독특하다. 커다란 말 한 마리가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언덕을 따라 모인 마을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을 채운다. 그러니 말과 사람 모두가 이 단체 사진의 주인공인 셈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여섯째로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 이족(彝族)이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농업과 목축을 병행해온 이들에게 말은 단순한 짐승이나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이자 문화적 자산이었다. 중국 쓰촨성 남부 대량산에 위치한 이족 자치주. 사진가 리판(李泛)은 근대화의 속도와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는 이곳의 시간을 사진으로 박제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서부의 개발이 본격화되며 산업화의 속도가 산맥을 넘을 때, 리판은 그 속도를 거슬러 소수민족들에게로 향했다. 1996년부터 그는 자신이 사는 산시성에서부터 간쑤·닝샤·칭하이·윈난을 오가며 이족·장족·회족 등 소수민족들의 삶을 17년간 기록해왔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문화에 대한 헌사이자 사진가로서의 소명이었다 “시간이 빛을 삼키기 전에, 그 빛의 마지막 형태를 남기고 싶었다”는 그는 중형 필름의 정방형 프레임을 통해 자연과 가축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존엄을 흑백의 언어로 담아냈다.
이곳은 중국에서도 가장 늦게 노예제도가 폐지된 곳이다. 3000년의 시간 동안 지배계층 아래 노예제도가 지속되다 단숨에 사회주의로 변모했으니, 서구에서 겪은 1000년이란 과도기가 아예 없었던 셈이다. 노예제에서 사회주의로, 봉건에서 근대로 한 걸음에 1000년을 건너뛴 민족이라는 상징적 서사는 그들의 삶에도 균열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농경사회의 말이 여전히 프레임의 중심에 있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청년들이 사라졌다. 다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탓이다. 리판의 카메라는 무심한 듯 정확하게 노동의 중심이 이동한 세대의 단절을 포착했다. 농경사회의 전통적 삶이 청년 세대의 공백이라는 오늘 안에 겹쳐 있는 모순된 공존, 수천 년을 이어온 소수민족의 삶이 담긴 언덕의 시간은 그렇게 박제됐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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