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디지털 기술 발달과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도 진화하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의 등장으로 관련 범죄도 고도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교묘한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일반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우두머리역할로 조직을 관리하고 범행을 관리하는 총책 △피해자들에게 연락하는 콜센터(텔레마케터) △총책과 콜센터에게 속은 피해자로부터 직접 현금을 건네받는 현금수거책 등으로 구성된다.
총책이나 콜센터 등 주범은 주로 외국에 소재하고 있다 보니 피해자를 속이고 받은 돈을 조직이 건네받기 위해서는 한국에 있는 공범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현금 수거책이라고 지칭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현금수거책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범죄완수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하므로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다만 본범들은 외국에 있기에 실질적으로 체포가 어렵다. 결국 현금수거책들만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른바 현금수거책으로 동원된 사람 중에는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것을 잘 모르고 연루돼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보이스피싱 범죄 공범으로 쉽게 연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곳곳에 CCTV가 설치돼 현금수거책을 찾아 체포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사회경험이 적은 학생이나 주부, 노인들을 현금수거책으로 삼는다. 주로 인터넷이나 구인·구직사이트 등에 광고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취업을 제안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자신들을 평범한 회사로 소개한다. 구체적이고 그럴싸하게 취업이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고 구직자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비하여 높은 소득으로 인해 쉽게 현혹된다. 이런 방식으로 연루된 현금수거책들은 수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현금수거책으로 가담한 사람은 자신이 범죄에 가담했음을 몰랐더라도 보이스피싱 범행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된다. 처벌받을 가능성이 매우 큰 셈이다. 이 경우 무죄를 받기 위해서는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 대한 최소한의 미필적 고의도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미필적 고의는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무시하고 행동한 경우'에 인정되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마”하고 넘기는 경우에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
구체적으로는 △회사의 실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음에도 범죄조직의 지시에 따라 현금수거 등을 한 경우 △현금을 직접 수거하는 경우가 일상적인 회사에서는 상정하기 어려움에도 이를 의심하지 않고 계속한 경우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큰 대가를 받는 경우 등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지속해서 범행에 가담할 때에는 단순히 몰랐다고 주장하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
이를 종합할 때 보이스피싱 범죄에 억울하게 연루됐다면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었던 정황과 입증 자료 등을 준비해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또 혼자 이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되기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해 더욱 교묘해지는 범죄의 경향 등을 고려할 때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회적 약자를 이용할 수 없도록 인터넷이나 취업사이트 등의 게시글·광고 등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 역시 검토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발달로 피해 규모나 피해자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숨겨진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조덕재 법무법인 YK 변호사 cdjlaw3@yklaw.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