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그 후 1년, 지금 민심이 말하는 것

2025-11-26

윤석열 외환 혐의 공소장에는 12·3 내란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적혀 있다. 윤석열이 처음 비상대권을 언급한 건 취임 6개월 뒤인 2022년 11월이다. 그는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내가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다 싹 쓸어버리겠다”고 했다. 여소야대에서 여야 대치가 가팔랐을 뿐 비상대권 운운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의 몇년 전 폭로가 떠올랐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이던 2020년 3월19일 대검 회식 자리에서 ‘육사에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검찰로 치자면 부장검사인 당시 김종필 같은 중령급이 한 것’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 삶의 터전인 이 나라를 제 영웅활극 무대쯤으로 여기는 그의 일그러진 공직관과 독재적 기질이 만악의 근원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를 해서는, 더더욱이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 2년여 전부터 비상대권을 흉중에 품었다는 사실 못지않게 놀라운 건 그 얘기를 처음 꺼낸 자리다. 윤석열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을 하면서 그 말을 했다. 거기에 동석한 사람들은 윤석열의 위험한 생각을 일찌감치 알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막으려 들지 않았다. 도리어 심기경호에 안달하며 윤석열이 폭주하도록 고속도로를 깔아주었다. 내란을 방조한 것이다. 그 흐름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표결 불참, 윤석열 탄핵 반대를 거쳐 ‘윤어게인’ 친화적인 장동혁 대표 체제로 이어졌다.

장동혁은 ‘집토끼, 산토끼’ 전략을 생각하는 것 같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을 먼저 잡아놓고 내년 지방선거 전에 중도로 확장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헌정질서·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을 집토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체제에 깊숙이 터를 잡은 주류 보수정당의 자기부정이다. 거기에는 시대의 대세를 읽는 통찰도, 역사를 보는 안목도 없다. 정치전략은 사회적 합의의 최저선을 허물지 않는 선에서 구사하는 법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최소 규칙을 지키면서 집토끼·산토끼도 잡고, 타깃의 우선순위도 정하는 것이다. 내란·외환이 무엇인가. 그 규칙을 무너뜨리고 국민 생명을 정치도박의 판돈으로 쓰려 한 것이다. 그걸 옹호하는 건 제 우물에 침 뱉는 짓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의 지금 행태가 그렇다.

요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대에 갇혀 있다. 국민 열에 일곱, 여덟은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비율이 내란 반대, 윤석열 탄핵 찬성 비율과 엇비슷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당 지지율은 부동산 등 여권 악재 이슈가 커지거나 여당의 거칠고 오만한 모습이 도드라질 때 잠시 반등하다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여론의 기본 축이 여전히 내란 찬반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보·중도·보수를 떠나 상식을 가진 국민 다수는 내란 옹호를 정치적 선택지에서 이미 배제했다. 이걸 보지 못하는 낡은 정치공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내란세력 비위를 한껏 맞추다 선거 앞두고 적당히 사과하는 시늉을 하면 민심이 돌아올 것 같은가. 그건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이다.

일주일 뒤면 12·3 내란이 벌어진 지 1년이 된다. 내란을 막아낸 것도, 윤석열을 파면한 것도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들이 바란 것은 민주주의·헌정질서 수호,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부끄럽지 않은 정상국가였을 것이다. 그 바람이 1년이 지난 지금 내란세력에 대한 견고한 반대 여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정부·여당이 과속·과잉·오만하면 회초리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검찰개혁 지지 대세는 흔들림이 없다.

가까이서 보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도 멀찍이서 보면 뻗은 방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란 극복도 마찬가지다. 때로 옆길로 새고, 더디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 같고, 소음도 크지만 큰 줄기는 잡혀 있다. 그렇게 가도록 균형을 잡는 것도 평범한 시민들이다. 궤도에서 이탈할라치면 여지없이 여론의 경고등을 켜는 이들의 집합지성이 내란 극복 도정의 가드레일 역할을 하고 있다.

루쉰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길을 지금 시민들이 내고 있다. 어수선하고 불확실한 시대지만, 그래도 이들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아직 희망과 낙관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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