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계획(千人計劃).
해외에 진출한 자국의 과학기술 인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엔 해외 유출 인재 재확보 계획인 백인계획(百人計劃)이 시행됐다. 천인계획은 그 후속 프로그램 격이다. 해외로 유출되려는 인재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여 국내 인재를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얽힌 불법적, 비윤리적 행태가 폭로되기도 했다. 반대로 세계적 과학자들을 중국으로 영입하려는 계획도 존재한다.

2010년대 이후 천인계획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이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만인계획(萬人計劃)으로 전환해, 국내 고급 기술개발 관련 인재 육성에 집중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천인계획은 표면적으론 영구 중단됐고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선 검색 금지어가 됐다.
중국의 이런 해외 인재 영입 프로젝트가 재가동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와의 체제 경쟁과 인공지능(AI), 바이오 같은 첨단 분야가 도화선이다. 천인계획의 주요 대체 프로그램은 산업정보기술부가 감독하는 '치밍'(Qiming)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거주 중국인 과학자들의 고국행이 잇따르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이후 대학 등에 지원해온 정부 연구비 등을 줄이는 반면 중국 당국은 첨단기술 제한에 나선 미국에 맞설 목적으로 자국 출신 과학자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잉 787과 에어버스 380 항공기 등에 사용되는 핵심 산업용 소프트웨어 창시자인 저우밍이 미국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알테어를 떠나 중국 닝보동방이공대학의 석좌교수 겸 초대학장으로 지난 6월 취임했다. 창장 삼각주에 있는 닝보동방이공대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차세대 혁신가를 육성하고 캠퍼스 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알테어는 시뮬레이션, 데이터분석, 인공지능(AI) 및 고성능 컴퓨팅에 특화한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와 계산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선두 기업으로 항공 우주·컴퓨팅·금융·에너지·자동차 산업에서 28개국의 1만6000개 사를 고객으로 둔 기업이다. 닝보동부이공대학 측은 저우 교수가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와 최적화 설계 기술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연구 개발팀을 구성할 것"이라면서 이는 중국 첨단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과 자주적인 혁신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우밍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최첨단 연구를 주도해 차세대 기술 혁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일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저우밍은 중국 항공우주 분야의 선두권 대학인 베이항대 출신으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8년 알테어에 합류해 글로벌 수석 부사장 겸 수석 엔지니어를 지냈으며, 올해 미국 공학아카데미회원으로 선정됐으나 근래 중국행을 택했다.

바이오 분야에선 펑건성이란 이름이 올라왔다. SCMP는 간암과 면역력 분야의 석학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명예교수였던 펑건성이 이달 귀국해 선전시의 선전만실험실(SZBL)에 합류해 암 연구소 소장을 맡았다고 전했다. 그는 "SZBL에 정식으로 합류했고, 지난달 말로 UCSD에서의 직위는 종료됐다"고 확인했다. SZBL은 광둥성과 선전시가 선도적인 과학기술 혁신센터를 건설하려고 설립한 연구 플랫폼이다.
펑 소장은 간암 재발 기전과 간암 면역 치료에 중점을 둬왔다. SCMP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학 예산 삭감으로 UCSD도 연간 7500만달러에서 5억 달러 가량의 미 정부 지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펑 소장의 UCSD 이탈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1978년 항저우대(현재 저장대 소속)에 입학했던 펑건성은 종양 생물학과 면역학 분야 연구의 길에 들어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40년 학자 생활을 해왔다.
최근 수십 년 새 미·중 양국의 첨단 과학기술 육성 경쟁이 치열해져 온 가운데 미국 거주 중국인 과학자들의 고국행이 두드러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국의 천인계획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일종의 ‘산업 스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1월 기술 정보와 지식재산권(IP)을 탈취하려는 중국 시도를 저지하려는 목적의 수사 프로그램인 '차이나 이니셔티브'를 시작해 반발을 샀고, 재집권 이후에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줄이면서 중국인 과학자들의 이탈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역시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제한의 고삐를 바짝 죄자 중국 당국은 해외에 있는 자국 석학은 물론 외국의 인재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

특히 중국 지도부가 이달 초 여름휴가를 겸해 국가 현안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 양자물리학, 생물학, AI, 재료과학, 의학 연구 등의 영역에서 활약하는 과학자들과 첨단산업 분야의 기업가들을 대거 초청해 미래 전략과 관련해 머리를 맞대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 '과학계의 여신'을 불리는 구조생물학자 옌닝, 양자물리학자 판젠웨이, 유방암 권위자 쉬빙허 등이 참석했다. 옌닝은 중국 관료주의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하며 미 아이비리그로 떠났다가 2022년 중국으로 복귀한 인물이다. 시진핑 정부가 이들을 모시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