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안 봐도 된다, 로봇이 사람보다 더 편한 이유

2025-05-09

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로봇이라는 말은 1920년에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미래를 상상한 자신의 희곡을 쓰면서 만든 말이다. 체코어로 ‘일하다’라는 뜻을 지닌 말 ‘로보타’를 변형해서 로봇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로봇이란 말이 처음 나온 지도 이제 100년이 훌쩍 넘었다.

혹시 그보다 더 과거에도 로봇이 있었을까?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 같은 장치라면 신라 시대에도 그런 것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에서 만들어 중국 당나라에 보낸 선물 중에 ‘만불산’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 사찰이 있는 산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일종의 모형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내부의 장치가 작동하면서 모형으로 만든 작은 승려들이 종을 치며 절을 하는 형태로 움직였기에 사람들이 대단히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좀 더 명확한 역사 기록의 사례로는 조선 시대에 장영실이 만들었던 물시계도 있다. 장영실의 물시계는 자동인형이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알려 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기계를 개발해 보려 했던 시도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음력 1499년 7월 7일 기록을 보면 김응문이라는 사람이 ‘소류마(小流馬)’라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름만 보면 작은 장난감 크기의 말을 닮은 기계였던 것 같은데 아마 조금의 짐을 실은 채로 걸어가는 기능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정확한 구조와 원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황을 보면 그럭저럭 작동하기도 했던 것 같다. 조정 사람들이 소류마라는 기계를 크게 만들어서 화물 운반용으로 이 기계를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자는 의견이 같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로봇, 100여년 전 작가 차페크가 만든 말

그 뒤로 별다른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소류마를 크게 만들었을 때는 실패했던 것 같다. 어쩌면 소류마는 동력을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라기 보다는 잘 굴러가는 손수레 정도의 장치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느 쪽이든 현대의 한국에서 새로운 트럭이나 물류용 로봇을 개발했을 때 조선의 발명가 김응문을 기려서 그 이름을 소류마라고 붙인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예로부터 기계 장치가 사람이 육체적으로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런 생각은 절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인형을 만들었던 신라 시대부터 20세기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로봇의 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 때문에 앞으로 미래에 더 많은 자동화가 진행되고 더 많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게 되면 사람은 육체가 아닌 감성적인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한동안 많이 나돌았다. 나아가 로봇에 비해 사람의 경쟁력은 인간성과 감정에 있으므로 그것을 잘 활용해야 미래 사회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계의 발달로 자동화가 점점 더 널리 이루어지는 최근의 현실을 보면 그러한 과거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인 변화가 더 눈에 뜨인다. 기계가 사람이 아니기에 오히려 감정적으로 유리한 분야에서 자동화 장치가 유독 빠르게 퍼지는 현상이 곧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노인 돌봄 노동에 대한 전망을 꼽아 볼 수 있다. 2014년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의 코리앤 스마르 등의 연구자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해져서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돌봄이 필요하다고 가정했을 때 노인들은 의외로 많은 영역에서 사람의 돌봄보다는 로봇의 돌봄을 더 원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사람은 로봇보다 더 친밀하고 더 사려 깊게 돌봄 노동과 간병 업무를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간병을 받는 입장에서는 생활의 내밀한 영역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니며 인격체가 아닌 기계의 도움을 받을 때 도리어 감정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이 같은 감정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보다 기계나 로봇을 대하는 일을 더 편하게 느끼고 있는 분야는 이미 꽤 많다. 시장이나 가게에 가서 직접 물건을 사는 일과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일의 차이도 그 좋은 사례다. 사람이 접객하는 가게에 가서 직접 물건을 고르는데 너무 오래 구경만 하고 막상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손님은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구경만 잠깐 하려고 가게에 들어갔는데 점원이 옆에 붙어서 “무엇을 사려고 왔느냐”고 물어볼 때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동화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구경할 때에는 그런 부담감이 전혀 없다. 재미 삼아 한 시간씩 쇼핑몰 웹 페이지를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미안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 한 가게를 한참 돌아보다가 다른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인터넷 쇼핑에서는 장바구니에 물건을 열 개, 백 개씩, 담아 두면서도 그중 하나도 사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대하는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매장에 가서 친한 상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얼굴 보고 흥정하는 일이 즐거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 대하는 일이 피곤할 때에는 사람이 아닌 자동화된 기계를 대하며 물건을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이 감정적으로 더 편안하다.

신라 만불산 등 기록에도 자동 장치 나와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기계, 로봇, 자동화 장치가 감정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더 깊게 파고드는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이 삶을 살면서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을 때나, 인생에서 감정적으로 지쳐 괴로움을 느낀 순간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대화 프로그램에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있다.

아마도 그 사람 중 대부분은 전문 상담자나 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눈다면 훨씬 더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찾아가서 털어놓는 데는 부담을 느낀다. 말하기 어려운 비밀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내게 한 뒤에 답을 요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 밤이나 낮이나 무슨 말을 하든 부담 없이 내 말에 대한 답변을 들려 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좋은 대안이다. 반쯤은 재미 삼아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한번 물어 보면 뭐라고 하나 싶어 고민 상담을 해 본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그다지 부담이 없다. 상대방이 아무런 인격이 없는 기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도리어 더 쉽게 솔직한 자기 마음을 털어놓게 될 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는 긴 시간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향해 정이 드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어떤 경우에도 예의를 갖춘 따뜻한 말로 대화하면서도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답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것은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특징이다. 가장 친한 친구라도 항상 따뜻한 말만 해 줄 수는 없는데 기계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오히려 인공지능과 기계가 사람을 더 잘 대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추세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요즘 키오스크가 설치된 음식점에 가 보면 사람을 대하면서 추천 메뉴를 보여 주고 돈 계산을 해 주는 일은 전부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신해 준다. 음식점 사장은 손님의 얼굴도 보지 못하면서 주방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음식을 내놓는 작업을 할 뿐이다. 배달 앱을 이용해 식사를 주문할 때에도 단골 고객 관리나 쿠폰 개수를 헤아리며 사람을 대하는 일은 전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다 처리한다.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는 물리적으로 힘든 일을 맡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특히 빠르게 성장하면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 또한 기계가 사람이 아니기에 오히려 감정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영역일 수 있다. 나는 이런 변화에 좀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태라고 생각하면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자면 과거의 예상과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다는 힌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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