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강릉 여행에서 만난 시인, 허난설헌

2025-02-20

지난달 개통한 동해선 열차를 타보셨나요? 기차를 타고 떠난 강릉 여행에서 만난 역사 인물을 소개합니다. 조선시대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입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강릉시 초당동에 있습니다. 강릉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초당두부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초당’은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의 아버지인 허엽 선생의 호입니다. 허엽 선생이 삼척부사로 있을 때,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강릉 초당두부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년) 강릉 초당동에서 허엽의 3남 3녀 가운데 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호가 난설헌, 이름은 초희입니다. 허난설헌의 동생이 바로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입니다. 여자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허난설헌은 오빠와 동생과 함께 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8살 때 지었다고 전해지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글이 특히 유명합니다. 상량문은 집이 잘 지어지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지요. 허난설헌이 쓴 상량문은 신선 세계 속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를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8살의 소녀가 상상 속에 푹 빠져 글을 짓는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허난설헌은 이후에도 신선 세계를 노래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현실 세계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허난설헌의 뛰어난 글솜씨는 남편과 시가 식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열다섯 살에 결혼했는데, 시를 잘 짓고 아는 것이 많은 며느리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애지중지 키우던 딸과 아들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삶의 고통을 시로 표현하며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마저 잃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허난설헌의 재능을 아껴주었던 오빠 허봉도 귀양살이를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1589년 27세의 허난설헌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말을 남긴 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허난설헌의 시가 모두 불타지 않고 세상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를 아꼈던 허균 덕분입니다. 동생 허균은 허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뒤에 강릉 집에 있던 허난설헌의 시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허난설헌의 시까지 정리하여 <난설헌집>을 펴냈습니다. 이후 허균은 명나라 사신에게 허난설헌의 시를 소개했는데, 허난설헌의 시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허난설헌 시집의 인기는 청나라 때까지 이어졌고, 일본에도 전해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서는 문화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는데, 허난설헌의 시가 지금의 케이팝 같은 조선시대의 한류 아니겠냐는 문화해설사님의 말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누군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님을 떠올렸습니다. 관람객분들의 이어지는 질문과 대화도 흥미로웠습니다. 강릉에서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허균과 같이 예술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산과 바다, 호수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말에 다들 공감했습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에 강릉에서 태어난 여성이라는 점은 같지만, 참 다른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해설을 듣고 나서 공원을 산책하며 허난설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백승아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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