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편의점

2025-07-16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편의점에 간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나’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거대한 관대” 뒤에 숨은 편의점의 익명성에 안심한다. 그렇지만 곧 편의점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편의점은 내 삶의 패턴을 집약해 보여주는 장소인 셈이다.

편의점은 물건만 파는 게 아니다. 택배·금융 등 생활 편의는 물론 민원서류 발급과 치안 등 공공 기능까지 흡수했다. 국내 전역에 깔린 편의점 숫자는 5만5000여개, 인구 대비 숫자론 편의점 왕국 일본의 배가 넘는다. 그래서인지 편의점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단면으로 간주된다. 고단한 하루 끝에 컵라면 먹는 당신, 간단한 먹거리를 사가는 취업준비생, 진상 취객에 시달리는 야간 아르바이트생 등 다양한 군상이 편의점에 있다.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 에어컨 없는 옥탑방에 사는 근배는 주휴수당을 못 준다는 말에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선택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편의점도 다르지 않다. 이곳 고객들은 배달노동자, 모델지망생, 취업준비생 등이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본사가 가져가는 현실 속에서 점주도 죽을 맛이다. 하나 다른 것은, 이곳에선 하루 3번 밥 짓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점주 이시원씨는 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이들을 위해 밥을 짓는다. 그는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너희를 챙겨주는 어른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편의점엔 고마움을 담은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어쩌면 밥 짓는 소리는 편의점의 그 ‘거대한 관대’가 낯설어 서성이던 청년들에겐 든든한 ‘빽’처럼 다가갔을 것만 같다. 모처럼의 미담에 가슴이 따뜻하다. 그러면서도 편의점에서 끼니 때우는 청년들이 안쓰럽다. 출발선이 공정하지 않고,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개인 탓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오늘도 편의점에 간다. 손님도 점주도 ‘을’이 된 편의점에서 청년들 격려는 못할망정 진상짓은 하지 말자. 이따금 앞사람이 무엇을 사는지도 살펴야겠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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