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 의존 탈피가 韓 과제…CPTPP 가입이 현실적 해법"

2025-08-17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 등 특정 국가의 시장이나 생산력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경제구조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역 다변화가 필수입니다. 특히 민간 기업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도록 연구개발(R&D)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 모리스 옵스펠드(사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교수는 최근 화상으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노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미국과의 관계를 줄일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무역 보복을 할 수도 없고, 안보 역시 미국에 기대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미국이 한국 측에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한다면 이 역시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짚었다.

옵스펠트 교수의 제언은 특정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를 개선하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약 1조 8697억 달러와 4조 262억 달러다. 한국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대미 흑자 규모는 한국(660억 달러)과 일본(685억 달러)이 거의 같다.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일본보다 크다는 의미다. 한국의 중국 교역 의존도 역시 높다. 지난해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은 중국(19.5%)으로 미국(18.7%)과 함께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관세정책으로 한국 경제는 또다시 격변을 맞고 있다. 미국은 지난 30년간 이어온 자유무역정책이 미국에 전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했고 각국에 관세장벽을 쌓는 새로운 무역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한국은 어떤 경제정책을 세워야 할까. 한마디로 교역 다변화다. 옵스펠드 교수는 현실적인 해법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제시했다. 그는 “이웃 나라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관계를 더 깊게 파고들고, CPTPP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한국은 무역 관계를 더욱 다양화하고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일본, 캐나다는 물론 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협정이다. 옵스펠드 교수가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올 5월 보고서를 통해 유럽연합(EU)과 한국이 CPTPP 가입을 통해 미국 우선주의에 대응해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의 CPTPP에 EU 27개국과 한국이 참여할 경우 전체 가입국의 GDP는 세계 GDP의 30%를 넘는다. 이 경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아무리 거세도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기조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게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민간 기업의 역동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R&D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의 민간 기업은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이며 국가의 힘과 자원을 총동원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곳도 이런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도 성공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R&D와 교육 시스템, 인적 자본 개발에 더 투자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이나 R&D 영역은 자원 동원 능력이 큰 대국일수록 유리하지만 한국 역시 교육과 인적 자본, R&D 투자 확대를 통해 역동적인 경제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옵스펠드 교수는 “일각에서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때문에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탄생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미국의 역동적인 기업 덕분에 달러의 지위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대학을 공격하고 연구비를 삭감하면서 미국에서 과학자들을 쫓아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탈하는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한국에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옵스펠드 교수는 올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5 전미경제학회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절상시키는 이른바 ‘마러라고 협약(Mar-a-Lago Accord)’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관세정책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한계를 보이면, 트럼프 행정부가 인위적 약달러로 미국의 수출 여건을 유리하게 조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넘어선 현시점에서는 마러라고 협약의 추진 동력이 상실됐다고 봤다. 고강도 관세에도 이미 약달러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옵스펠드 교수는 “달러는 1월 이후 약 10% 정도 하락했고 현재 미국의 어떤 교역국도 지금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도 그런 접근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지 않다”며 “무역 협상이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해외 각국을 상대로 추가적인 달러 평가절하에 합의하도록 이끄는 건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행정부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를 통한 제조업 부활은 어려울 것으로 봤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대규모로 가져온다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애초부터 미국 제조업의 감소는 무역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자동화의 결과물인 까닭이다. 중국조차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소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세수 확대나 러시아 휴전과 같은 정책 목표도 관세로 달성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관세 수입이 재정 확충에 기여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으로 발생할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없다”고 말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국제 협력과 다자주의를 존중하는 예전의 정책 기조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국 달러의 지위는 약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많은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의 정책 변동성과 강압적인 정책에 대응해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노출을 줄이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며 “지금 경로가 이어진다면 어느 시점에 시장이 달러에서 이탈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나 위안화, 엔화가 현재 달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다극적 통화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모두가 참고하는 표준 글로벌 통화가 사라지면 세계경제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며 “결국 지금 우리는 더 많은 통화가 있는, 덜 번영한 세계로 가는 중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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