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에스콤’ 소속 불법 파견
하청 뜻하는 ‘갈색 옷’ 입고
LG 측에서 업무 지시받아
“휴식 공간도 따로 없이 일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직접생산 공정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 법으로 금지돼 있어도 국내 제조업계에서는 불법파견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굴지의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도 같은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월 LG에너지솔루션 사업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남부지법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낸 이병문씨(41)와 최성훈씨(55)는 파견업체 ‘프로에스콤’ 소속으로 배터리 생산 기초공정인 ‘믹싱 공정’에 투입돼 충북 청주시 오창 공장에서 각각 6년, 9년을 일했다.
최씨는 3일 “임금보다 기본적 처우가 더 문제였다”며 “협력사 직원의 휴식 공간이 따로 없어 LG 직원들과 함께 사용했는데, 자유롭게 쓰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소송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현대차 등 다른 회사에서 벌어진 불법파견과 뒤이어 나온 노동자들의 잇따른 승소 소식이었다. 이씨는 현대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봤다. 이씨는 “내가 불법파견 노동자라는 걸 확신했고, 한 번 싸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송을 결심한 2020년부터 불법파견 정황이 드러난 증거를 하나씩 모았다. 최씨 등 다른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LG 엔지니어들은 주로 온라인 단체대화방과 e메일로 생산량·기일 등 업무 관련 내용부터 언제 일하고 언제 쉬어야 할지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들이 속한 프로에스콤은 인력공급 업체로 배터리 기술은 갖고 있지 않다. 법원에 낸 소장을 보면 프로에스콤의 등기부등본에는 법인목적에 경비·청소업 등만 적혀 있다. 제조 관련 생산업은 기재돼 있지 않다. 최씨는 “장비나 원자재 같은 것들도 모두 LG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송을 낸 뒤 지난 9월23일부로 고용 관계가 완전히 종료됐다. 이들이 속한 공정이 외주화되면서였다. 이씨와 최씨는 직장을 잃은 후 배달기사로 일하고 있다.
소송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앞서 현대차와 아사히글라스 하청 노동자들은 소송에서 승리하는 데 각각 13년, 9년이 걸렸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5명을 선임해 소송에 대응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장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은 갈색 방진복을, 원청 소속 직원들은 파란색 방진복을 입고 일한다. 이씨는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보다도, 정규직으로 파란색 방진복을 꼭 한 번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