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심리 위축에 공모채 미매각 사례 속출…사모채로 선회 잇달아
HL디앤아이한라·HDC현산 등 일부 건설사, 공모채 시장서 오버부킹
[미디어펜=박소윤 기자]건설업계가 채권 발행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자금 조달 방식이 뚜렷한 양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미매각 우려로 사모채나 자산유동화를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반면, 일부 건설사들은 실적 개선 기대감을 앞세워 공모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지난달 30일 1년 만기 사모사채를 6% 후반대 금리로 발행했다. 쌍용건설은 앞선 26일에도 6.9%의 고금리로 70억 원 규모의 사모채를 조달한 바 있다. 같은 달 교보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은 각각 800억 원, 계룡건설은 200억 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발행했다.
업계는 이를 공모채 미매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한다. 공모채 흥행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충할 수 있는 사모채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공모채 시장의 분위기는 올 하반기 들어 더욱 경색되고 있다. 상반기엔 금리 인하 기대 등에 힘입어 전체 회사채 발행액이 75조 원을 초과하는 등 역대 반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로 인한 경기 하방 압력과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 횟수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든 상태다.
특히 건설사에 대한 투심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도급순위 10위권인 모 건설사는 최근 1100억 원 규모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매수 주문 '0건'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사모채는 비교적 금리 부담이 높지만, 소수의 특정 투자자에게 직접 판매되기 때문에 발행 절차가 간단하고 신속하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모채 시장이 건설사들의 공모채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산유동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도 확산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신영증권 주관으로 총 220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에 성공했다. 기초자산은 경북 포항시 환호공원 부지에서 진행 중인 공동주택 신축사업으로, 현재 공정률은 90%에 달한다.
GS건설도 지난 5월 송도국제화복합단지 2단계를 기초자산으로 2000억 원을 조달했다. GS건설은 지난해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겪은 이후, 공모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 HL디앤아이한라·HDC현산·SK에코 등, 건설채 '한기'에도 '흥행'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일부 건설사들은 공모채 시장에서 흥행을 거두며 차별화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HL디앤아이한라는 올해 두 차례의 공모채 발행에서 모두 모집액을 뛰어넘는 매수주문이 접수되는 오버부킹을 기록했고, HDC현대산업개발도 1200억 원 규모 모집에서 2320억원의 투자수요를 모았다.
이들 건설사의 흥행 비결은 미래 성장성과 실적 개선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HL디앤아이한라는 올해 약 6000억 원 규모의 자체사업이 실적에 본격 반영될 예정이고, 지난해 2조6000억 원 가량의 신규수주로 3년 만의 반등을 이루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도 내실경영 전략을 통한 재무구조 회복세 등으로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4조211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가이던스에 부합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올해 매출 가이던스는 4조3059억 원으로 제시했다. 올해는 1만여 가구의 분양 계획을 비롯해 서울원 아이파크, 파주 메디컬 클러스터 등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이 본격화된다.
신용등급도 상향 조정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신용평가사 정기 평가에서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됐다. 올해 금융기관 정기 신용등급평가에서도 우리은행, KB은행, 하나은행이 신용평가등급을 높였다. 수주와 공급 회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감소 등이 신용등급 향상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SK에코플랜트는 올해 두 번째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트랜치는 1년물 300억 원, 1.5년물 400억 원, 2년물 600억 원 등 총 1300억 원 규모로 구성됐다. 희망 금리는 개별민평 대비 -30bp에서 +150bp 수준으로 제시했다.
SK에코플랜트의 공모 회사채 발행은 올해 초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당시 총 1300억 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의 5배를 웃도는 7000억 원의 주문이 접수됐다. SK에코플랜트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6% 상승한 2조6105억 원이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70억 원, 508억 원으로 집계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방식이 신용도와 사업전망 등에 따라 전략적으로 갈리고 있다"며 "공모채와 사모채, 유동화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