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자본주의와 이별해야 할 순간

2025-05-19

21세기 들어선 후 사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우리 사회의 미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더워지는 날씨보다 더 뜨겁게, 여러 정치세력이 제각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복지·교육·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온 제안들은 이 들끓는 용광로에 어떻게 녹아들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게 될 것인가.

걱정과 기대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제 구시대와 진짜 단절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한가. 구시대적 사고의 산물이었던 불법계엄으로부터 촉발된 대선인 만큼 이를 넘어선 김에 과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열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존경하는 어떤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나는 “찌꺼기는 가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찌꺼기는 특정 정권의 유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천민자본주의의 유산을 말하는 것이다. 더욱 좁혀서 말하면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사람을 그저 생산의 도구로 여기는 우리 머릿속의 사고방식과 행동과 제도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 변화의 주체는 사람이므로 특히 사람이 연대하고 다투고 협력하는 정치가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국민 스스로의 선택이라면 말이다.

한국 사회는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체에 걸쳐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큰 사회이고, 모든 부문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효율성을 기치로 모든 것이 작동하는 사회이다. 계층 이동성은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기 어렵고 무엇 하나가 부족하다면 약자로 취급되고 소외되기 십상이다. 불평등과 인간소외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가 지금 바닥에 있는 행복 수준과 천장에 닿아 있는 자살률이다.

저비용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경제와 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국 사회에는 여러 복지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그 중심에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제도만 있고 그 바탕과 목적에는 사람은 없는 이상한 복지국가로 진화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공공과 민간의 사회복지사, 그리고 아동·노인·장애인·환자 등을 돌보는 사람의 임금은 낮다. 이들의 노동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 돌봄과 소득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가 있지만 그 질은 높지 않다. 예컨대 2025년 국민연금 개혁은 이뤄졌지만 이것으로 미래세대에 대한 보장 수준이 충분할 것 같지는 않다. 아프면 쉴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노동권과 사회권은 소기업 노동자와 특고 노동자 등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요원하다.

게다가 모든 정치세력이 인공지능(AI), 디지털, 첨단기술, 혁신을 말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꿈꾸고 실행해내는 주체인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라면 희망이 없다. 아이템만 첨단의 것으로 갈아 끼운들 태도가 그대로라면 소외와 불평등의 내용만 달라질 뿐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을 구현할 방법을 모색하고 표준의 경계 바깥에 있는 수많은 예외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바탕에 둘 필요가 있다.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 권리를 비롯한 사회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문을 열어젖히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생산주의 시대에 체득한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설 필요가 있다. 복지 등 사회정책에서 철학과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감한 사회적 자원 투입을 두려워한다면 결국 약자를 억압해 비용을 쥐어짜는 젠더, 인종, 세대 분할의 극우적 정치전략만 살아남을 것 같아 두렵다. 바로 지금이 모두를 숨 막히게 만드는 일종의 싸구려 자본주의와의 결별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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