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현장에서]
시리즈 순서
1.아르헨티나 살린 전기톱 개혁
2.100년 전 부잣집 어떻게 기울었나
3.이 바닥의 미친놈 밀레이는 누구
4.반세기 포퓰리즘 금단현상은 아직
5.달리는 개혁열차 멈출 수는 없다
좌파 포퓰리즘이 반세기 넘게 망쳐놓은 아르헨티나는 지금 수술대에 올라 있다. 의사는 ‘미친놈(El Loco)’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그는 메스 대신 전기톱을 휘두른다. 재정, 보조금, 정부조직, 공무원, 각종 규제가 그의 전기톱에 뭉텅뭉텅 잘려나가고 있다.
자유지상주의 개혁 현장에서 보름 동안 택시 기사부터 정재계 인사에 이르기까지 40여명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렇게라도 안 하면 도저히 바꿀 수 없을 지경이 됐다’고 설명한다. 포퓰리즘은 더 이상 안된다는 공감대가 감지됐다.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인은 대중영합 정책으로 요약되는 페로니즘이다. 한 마디로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이다. 그에 취해 흥청망청 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처음 손을 내민 게 1958년. 그 잘 살던 나라가 기울기까지 불과 10여 년밖에 안 걸렸다. 그 뒤부터는 익숙히 알려진 아르헨티나 경제의 흑역사가 21세기까지 이어졌다.
밀레이는 포퓰리즘의 달콤한 중독을 깨우기 위해 쓴 약을 내밀었다. 당연히 금단현상과 저항이 나올 수밖에.
지난 3월 12일과 19일 시위 현장엔 땅이 뒤흔들릴 함성이 터져나왔다. 수천 명이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졌다. 그곳에서 취재 중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고, 경찰 고무탄을 맞고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종아리와 엉덩이에 맺힌 핏멍울의 고통은 ‘이게 무슨 자유주의냐’라며 나를 시위대와 공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역시 거쳐야 할 개혁의 과정이다. 1년 반 남짓한 밀레이의 개혁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성장률, 물가, 환율, 주가, 빈곤율…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이 포퓰리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개선됐다.
아르헨티나의 개혁은 지금까지 대세였던 복지국가 모델과는 궤를 달리 한다. 정부에게 기대지 말고 개인과 시장이 알아서 하라는 자유방임 또는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해 있다. 한물간 신자유주의의 원조쯤으로 여겨지던 사조다. 이게 밀레이의 개혁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아르헨티나처럼 정부효율부(DOGE)를 설치해 일론 머스크에게 맡겼다. 밀레이는 머스크에게 전기톱을 선물하기도 했다. 공공부문 축소라는 공통분모를 부각시킨 셈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아르헨티나를 두고 말이 많다. 정말 와보고 말하는 건지는 의문이다. 지도자 잘못 뽑으면 아르헨티나처럼 된다면서도, 내세우는 공약은 정작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을 빼다박았다. 특히 민주당의 기본소득,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 공약이 그렇다. 그럴 듯하게 포장한 지역화폐도 아르헨티나에선 이미 여러 차례 해보다 부작용만 키웠다. 먼 훗날 한국에도 전기톱이 나와 잘라내야 할지 모른다.
개인의 윤택한 삶을 국가가 보장해줄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의 반세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국민을 위한다며 뭐든 다 해줄 것처럼 유혹한다. 실패의 낭떠러지가 뻔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이를 두고 미국 보수층에선 포퓰리즘을 넘어 사회주의에 다가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온다. 반공주의자로 유명한 고든 챙 박사도 본지 영문매체인 koreadailyus.com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우려를 표했다.
포퓰리즘은 유혹하고, 사회주의는 덮친다. ‘비야31’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를 보고 든 생각이다. 한인들의 자랑스러운 모국이 그에 당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장 열 / 사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