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SF영화 <미키 17>이 내달 개봉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봉 감독은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미키 17>의 주요 장면 15분 가량을 언론에 선공개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주연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동석했다.
<미키 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각색한 SF영화다. 배경은 우주 행성으로의 이민이 가능해진 2054년의 근미래다. 마카롱 가게를 하다 망해 무서운 사채업자에게 쫓기게 된 청년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아예 지구를 뜨기 위해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용)’ 자격으로 우주 이민을 지원한다. 인간을 프린터기에서 서류 출력하듯 뽑아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시대, 사람들은 작업 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일을 맡기기 위해 인간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익스펜더블은 죽으면 20시간 내 다시 프린팅된다.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신체 조건으로, 과거의 기억, 감정까지 그대로 유지된 채 다시 태어난다. <미키 17>은 17번째 미키가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실수로 18번째 미키를 프린팅해 미키가 두 명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익스펜더블은 ‘계속 죽는 직업’이다. 그가 수행하는 일은 소모용이 아닌 인간에게도, 인간이 아닌 로봇에게도 맡길 수 없는 것들이다. 미키는 우주 한복판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채 서서히 죽어가면서 ‘인간의 피부는 이 정도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 얼마나 빨리 타들어가는지’ ‘얼마나 빨리 눈이 머는지’를 상부에 보고한다. 미키의 담당자는 “피부의 상태를 볼 수 있도록 장갑을 벗어달라”고 요구하고, 손이 잘려 허공을 떠다니자 감탄의 탄성을 지른다. 미키는 매일 끔찍한 일을 하다 죽지만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미키는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미키에게 담당자는 말한다. “매번 당신이 죽을 때마다,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요.”
<기생충>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계급·계층,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미키’라는 청년 노동자를 통해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 살아있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자연스럽게 권력이나 권위가 없는 캐릭터들에 끌린다. 미키도 극한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다. 계급 문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 간의 투쟁’을 다룬 건 아니다. 되게 불쌍한 미키의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은 SF 중에서도 과학적 설명이 많이 나오는 ‘하드 SF’로 유명하다. 봉 감독은 소설을 각색하며 과학을 덜고, 인간은 더했다. 미키의 직업도 바꿨다. 원작에서 미키는 지적인 역사가지만, 영화에서는 망한 자영업자다. 원작에서 미키는 7번 죽지만, 영화에서는 10번을 더해 모두 17번 죽는다. 죽는 일이 직업인데 7번 밖에 안 죽는 것은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부분을 다 빼고 땀냄새 나는 인간들 이야기로 채웠다. 인간냄새 물씬 나는 SF다”라며 “노동 계층의 외롭고 불쌍한 친구가 위험한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미키의 과거도 단순하게 바꿨다”고 말했다.
로버트 패틴슨이 미키 17과 미키 18로 1인 2역을 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창백하고 슬픈 뱀파이어, <더 배트맨>의 어두운 히어로 같은 무거운 역할을 주로 맡은 그는 이번 영화에서 어수룩하고 가엾은 청년의 얼굴을 보여준다. 봉 감독은 ‘멍청하고 불쌍한’ 미키 17부터, ‘예측불가능하면서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미키 18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처음부터 로버트 패틴슨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이번 영화로 첫 내한한 패틴슨은 “어떤 영화에서도 미키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모든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감독이다. 전세계에 봉 감독 같은 감독은 4~5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먼 프린팅, 외계 괴물, 우주선 등 모든 요소들이 대작 SF영화의 느낌을 물씬 풍기지만, 정작 봉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가장 뿌듯했던 건 영화에 ‘러브 스토리’를 넣은 것이라고 했다. <미키 17>에는 봉 감독 영화 최초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봉 감독은 “우주선도 처음 찍어보니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것보다 제 25년 경력 최초로 영화에 사랑 이야기가 있다.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너무 뻔뻔하지만 사랑의 장면들이 있다. 저는 그게 제일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통역은 <기생충>때 봉 감독의 통역사로 유명해진 최성재(샤론 최)씨가 맡았다. 최씨는 봉 감독이 한글로 쓴 <미키 17> 각본을 영어로 번역하고, 영화 촬영 과정에서 모든 스태프들의 통역을 전담했다. 미키의 친구 티모 역은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이 맡았다.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등이 출연한다. 내달 28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 후 3월7일 북미에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