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미래를 버릴지도

2025-05-15

그럴지도 모른다. 정치가 미래를 버릴지도 모르겠다. 기후를 말하며 기후를 배신하고, 전가의 보도쯤 되는 녹색성장은 성장의 독에 갇혔다는 자기 고백이다. 극한 가뭄과 홍수, 사스와 코로나 등 인수공통전염병, 그리고 산불까지 차고 넘치는 증거와 징후에도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인류의 파국을 예측하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아주 가뿐히 무시하면서 ‘지금은’이라고 외치고 ‘압도적인’ 지지를 호소한다. 다음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이재명 후보 이야기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0대 정책공약을 등록했다. 기후와 환경은 순위 열 번째다. 국민의힘에 비하면 이렇게라도 순위에 밀어 넣은 걸 고마워해야 하나. 아니, 대한민국 제1당과 제2당의 수준에 절망하고 통곡이라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정치가 미래를 버리고 있다.

이 후보는 공약 1순위로 ‘세계 경제 강국’을 꼽았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 K콘텐츠 50조원 수출, 방산산업 국가대표로 육성의 구호가 요란하다. 민간투자 100조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 확보, 국방 연구·개발(R&D) 확대, 글로벌 OTT 육성 등 천문학적 자금이 예고된다. 여기에 전 국민 기본소득, 청년 기초자산, 지역화폐, 공공주택, 지역균형발전까지 말한다. 마지막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이 자리할 것이다. 공약 간 예산 경쟁에서 기후 공약은 후순위다. 극적이지도 않은 성장주의로의 귀결이다. 그런데 그 돈, 어디서 나오는가? 정작 증세는 없단다. 탄소를 먹고 자라는 산업 성장을 맨 앞에 놓고 맨 뒤에 기후를 말하는 것도 모순인데, 재원 확보 방안은 기만적이다.

기후도 지키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표어는 유권자로서 서글프다. RE100 산업단지를 만들겠다지만, 그 안의 공장들은 여전히 온실가스를 뿜어댈 것이다.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가덕도신공항을 2029년까지 완공하겠다는 선언도 기가 차는데 온실가스 절반을 줄이겠다고 공언하면서 전국에 광역교통망과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겠다고 외친다.

기후정책과 산업정책, 지역개발정책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충돌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반도체, 배터리, AI 산업은 엄청 많은 전력을 먹는 괴물이다. 데이터센터 한 개가 소도시 하나보다 전기를 더 많이 쓴다. 여기에 100조원을 퍼붓고, 동시에 탄소를 줄이겠다? 이 정도면 정말 드라마틱한 위선이다. 게다가 에너지고속도로도 건설한다고? 기껏 서울로 향하는 송전탑 행렬을 이렇게 포장하다니 홍보 역량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정의로운 전환’도 실종됐다. 이재명 후보는 석탄발전 전면 폐쇄를 공약했지만,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어떻게 보호할지는 말이 없다. 산업 전환을 말하면서 사람 이야기를 뺀다는 것은 폭력이다. 더욱이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지역’과 ‘시민 참여’는 철저히 배제됐다. 피해받는 이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을 전환 주체로 세워야 하는데, 공약집 어디에서도 시민은 주체가 아니라 수혜자다.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당신의 공약은 정말 지구를 살리는 길인가? 아니면 파멸로 가는 길인가? 또 물어야 한다. 당신의 공약은 진실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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