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차이나서평] 리버럴의 질문, 차이나 자유주의의 가능성과 딜레마

2025-05-14

리버럴의 질문-차이나 자유주의의 잠재성과 딜레마

류칭 지음

조경란 옮김

솔과학

류칭에 주목한 이유

이 책은 중국 상하이 화동사범대학 교수 류칭(劉擎)의 핵심 글을 선별, 번역한 것이다. 류칭은 자신을 ‘평등주의적 리버럴리스트’라 부른다. 그는 민족주의나 중화주의에 기대지 않고 사유의 긴장을 유지한다. 이는 중국 사회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려는 학자적 노력의 결과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유주의를 포함한 모든 이념에 대해 비판적이고 논쟁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류칭의 반성적 글쓰기는 그의 학문적 내공과 더불어 중국의 젊은 세대와 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류칭은 1930-40년대 중국의 사민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이 고심했던 바로 그 지점을 잇고 있다. 자유주의 앞에 ‘평등주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 뚜렷한 증거다. 그의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자유주의자와 구별되는 이유다. 류칭은 중국 내부의 주류 담론에 대한 성찰과 토론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점에서 그의 자유주의는 ‘비판적 자유주의’(critical liberalism), ‘논쟁적 자유주의’(argumentative liberalism) 또는 ‘담론적 자유주의’(discursive liberalism)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중국인 학자는 흔하지 않다. 내가 류칭에게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자유주의 소개, 왜 중요한가

첫째, 중국 현대사상은 신유가, 신좌파, 자유주의자 세 유파로 구성되지만, 한국에서는 신좌파 중심으로 소개되어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자유주의자는 비주류이지만 수적으로는 가장 많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 자유주의 관련 번역서가 소개되어 균형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둘째, 이 세 유파 중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학문적 거리두기와 비판적 사고가 뛰어나다. 신유가는 문화 본질주의에, 신좌파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치우쳐 있어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중국의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셋째, 중국 내에서 정치권력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들 역시 자유주의자들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이 중국 지식인들과 연대를 고려할 때, 이들이 가장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 자유주의의 ‘불행한’ 여정

중국 자유주의는 여러 역사적·사상적 조건 속에서 지속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왔다. 19세기 말 처음 ‘자유’(liberty) 개념이 유입될 때, 중국에서는 이를 ‘무질서’와 ‘방종’으로 오해했으며, 제국주의와 결합되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1949년 공산 정권 수립 후에는 자유주의가 반동사상으로 규정되어 억압받았고, 개방 이후에도 제한적 논의만 허용되었다. 1990년대에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신자유주의자들과 동일시되며 신좌파의 비판 대상이 되었고,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주의가 뒤섞이는 가운데 자유주의 전체의 이미지가 왜곡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자유주의자(liberalist)들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로 낙인이 찍혀버리기도 했다.

시진핑 체제 이후 유학은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채택된 반면, 자유주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배척당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검열이나 탄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역사적·사상적 구조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의 조건은 까다롭다. 한국과 대만에서 ‘반독재’ 투쟁을 했던 자유주의는 ‘반공 자유주의’, ‘냉전 자유주의’로 불렸으며 사실상 반자유주의적 역할을 수행했다. 두 지역은 1980년대 민주화를 통해 제도적 자유민주주의를 성취했지만, 여전히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냉전적 사고가 남아 있다. 특히 한국의 전통적 좌파는 자유주의를 반공 이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결판이 났으며, 이제는 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새롭게 인식하되 그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그래야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비판적 수정이 가능해진다.

이 책의 세 가지 키워드

류칭의 주장은 세 가지 핵심 쟁점, 즉 자기정체성, 학문 독립성, 자유주의의 딜레마로 정리된다.

첫째, 자기정체성의 문제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왔다. ‘서구적 현대화’라는 목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으며, ‘대안적 현대성’ 또는 ‘중국 모델론’은 자기정체성 구현의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류칭은 이러한 대안이 종종 더 큰 야만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신좌파나 신유가가 주장하는 ‘중국성’이나 ‘조공체제’ 담론은 역사적 실패를 반복하거나 전통으로의 무매개적 회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대안 담론은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로는 권위주의, 파시즘 등 더 위험한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류칭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마틴 자크의 책을 비판한다. ‘문명 본질주의적 서술 방식’에 근거한 중국식 대안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학문 독립성의 문제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학문의 전문화는 진전되었지만, 학문 자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는 ‘중국정치학’이라는 독립된 학문 분야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정치 관련 연구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있다. 이는 학문적 평가 체계의 부재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치학이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학문이라면, 중국의 현실은 반대로 학문이 권력에 봉사하는 구조다.

셋째, 자유주의 딜레마의 문제다. 류칭은 자유주의가 더 이상 서구 문화에만 국한된 전통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자유 개념에 대한 오해, 특히 자유를 ‘절제’와 반대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풍조를 비판한다. 고대의 미덕이었던 ‘절제’는 동양의 ‘중용’과 상통하며, 21세기에는 이를 재해석하여 자유주의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절제는 법치의 뒷받침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고, 이는 정치적 다원성을 보장하는 구조와 연결된다. 하지만 현재 중국 본토에서는 신좌파와 신유가에 기반한 국가주의적, 문화 본질주의적 이념이 강화되며, 국가를 주체로 한 도덕적 교화나 사상 통일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명제와 충돌한다.

류칭은 오늘날 중국사회가 이미 단일한 집단정체성을 상실했으며, ‘중국인’의 정의조차 불확실하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것은 유가든 사회주의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중국이 당-국 체제에서 한때 국가 중심의 탈이데올로기화로 전환했다가 다시 당 중심 체제로 회귀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이 ‘장기적’으로는 사회 중심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목표조차 없다면 지식인 사회가 다시 야만적 ‘대안적 현대성’ 환상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중국의 대안 담론은 점차 국가주의 정당화의 언어로 전환되었으며, 해방이 아닌 권위주의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진정한 대안은 서구 자유주의의 무비판적 수용도, 중국 전통의 무비판적 회귀도 아닌, 이 양자를 동시에 비판하는 성찰적 사유에서 출발해야 한다. 메타인지와 자기비판이 결여된 대안 담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권위주의 엘리트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지식인을 볼 때 우리는 흔히 “그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를 함께 보는 메타적 독해”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적어도 류칭은 ‘중심-주변 구도’를 재구축하려는 권력적 서사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지식인임이 분명해 보인다.

조경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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