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보다 깊은 인간 욕망…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2025-05-27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들이 끝없는 땅거미 속에서 춤추는 곳. 인류 마지막 미지의 영역, 심해다. 이곳 생명들은 육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심해의 기준으로 통상 일컬어지는 수심 200m에 도달하면 햇빛이 급격히 줄어 광합성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 아래로는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극도로 높은 수압, 낮은 수온 과 산소 농도 등 극한 환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이유로 심해는 오늘날까지도 과학적으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인간이 거의 손대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극한의 생태계에 현대 인류가 갈망하는 자원이 매장돼 있다. 해저 퇴적물 속 금속 이온이 수백만년에 걸쳐 축적돼 형성된 망간단괴에는 망간·니켈·코발트·구리 등이 풍부하다. 디지털 기술, 에너지 전환, 전력 저장, 우주·방위 산업 등 첨단 산업 분야 전반에서 이들 금속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올리비에 비달은 현재 금속 소비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다음 한 세대인 2050년까지 인류가 태초 이래 채굴한 총량보다 더 많은 금속을 소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은행 역시 흑연·코발트 등 광물 생산량이 2050년까지 5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육지에서도 광물 채굴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산림 파괴, 수질 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탄소 배출, 인권 침해 등 심각한 환경·사회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니켈 광산 개발로 인한 산림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코발트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물질로 인한 주민 건강 악화 사례가 다수 보고된다. 여기에 희귀 금속과 희토류 가공의 90% 이상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은, 육상 광물자원의 한계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류는 심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망간단괴 채굴은 트랙터형 수집기가 해저 퇴적물을 흡입해 수집선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적물 확산, 유체 흐름, 소음 등은 심해저 생태계를 심각하게 교란할 것으로 우려된다. 심해 평원은 서식지를 이동해 회피할 수 없는 생물들이 밀집해 있고, 생태계 회복 속도도 극히 느려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독일이 1989년 남태평양 페루 분지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심해저는 인위적 교란 후 26년까지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 미생물 활동은 최대 4배 감소하고, 부유섭식동물 군집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면체에 알을 낳고 망간단괴에 의존하는 문어류 등 특정 생물은 서식 기반이 무너지면 개체군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교란의 영향은 수십년간 생태계 기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국제 해역 심해 채굴을 포함한 전략 광물 자립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상무부와 내무부에 자원 탐사 및 채굴 역량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의 심해 채굴 기업 TMC는 미국에 심해 채굴·탐사 허가를 신청했다. TMC는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는 미국의 독자적인 허가 체계가 국제해저기구(ISA) 중심으로 진행된 규범 논의를 저해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르웨이도 2024년 초 북극 해저 채굴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심해 채굴을 둘러싼 국제적 움직임은 가속화하고 있다. 광물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국가들이 마지막 미지의 영역마저 자원화하려는 신호다.

우리는 지금, 심해라는 지구 최후의 신비를 대가로 어떤 사회를 이루려는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끝내 인간의 욕망이 모든 경계를 넘어설 때,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풍요로 가장한 상실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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