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로폼, 난 뿌리부분 통풍 막아 과습…금세 ‘시들’

2025-02-09

난 유통업계에서 1∼2월은 대목이다. 기관·단체에서 인사 이동이 집중되면서 축하 선물로 난을 주고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난이 금세 시들어버려 화훼업계 이미지를 훼손하고 소비 확대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본지가 서양란 화분을 실제로 절단해본 결과 화분 내부가 흙·돌 등이 아니라 스티로폼 등으로 채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축하난이 이유 없이 조기 고사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화훼류 소비 활성화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잘라보니 화분 단면은 3개의 층?=본지가 잘라낸 화분은 시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다. 품목은 호접란(팔레놉시스)으로, 작물체 높이는 80㎝가량이다. 이 중 화분 높이만 35㎝다. 화분 재질은 딱딱한 플라스틱이었다. 그라인더로 화분을 절단해보니 화분 내부는 예상과 달리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었다(1면 사진). 첫번째 층은 인조 이끼층이었다. 그 아래층은 작물체 줄기별 뿌리를 감싼 플라스틱 포트 5개로 채워져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 욱여넣다시피 한 포트들은 꺼내려 해도 잘 빠지지도 않았다.

가장 놀라운 건 최하층이었다. 직육면체 형태의 스티로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티로폼층은 무려 23㎝로 화분 전체 높이(35㎝)의 65%에 달했다.

“과도한 스티로폼, 뿌리 부분 통풍 막아 생육에 지장”=분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티로폼은 가볍고 물 빠짐이 쉬워 화분 내부 밑바닥에 폭넓게 사용하는 재료다. 한재복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 분화부 경매사는 “화분에 물이 고이면 뿌리가 썩기 때문에 대개는 화분 밑바닥에 스티로폼을 얇게 넣어 스티로폼 내 공극(작은 틈)으로 배수가 잘되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스티로폼 삽입량이 늘어났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꽃집(화원)을 운영하는 강석수 한국분재협회 홍보처장은 “화분 전체에 흙·난석·수태(물이끼)를 사용하는 것보다 스티로폼을 넣는 게 싸게 먹혀 점차 많이 쓰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화분 내부 대부분을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포트로 채우게 되면 호접란 생육에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농촌진흥청 농업기술포털 ‘농사로’에 따르면 호접란은 나무에 착생하는 종으로 공기 중 노출된 뿌리인 기근(氣根)으로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렇게 뿌리가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건조되는 환경에서 서식하는 호접란은 뿌리 부분의 과습을 싫어한다.

강 처장은 “조그마한 플라스틱 포트 속에 갇힌 호접란은 생장할수록 포트 내부가 뿌리로 가득 차면서 생육 환경이 악화돼 서서히 시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는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해당 난이 포트째 박혀 있고 스티로폼이 과도하게 적재돼 있는 것 자체를 모른다”면서 “실제로 분갈이를 위해 화원에 가져와서 개방한 화분에서 스티로품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소비자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동양란도 마찬가지”…관리 잘못 탓이란 주장도=이같은 관행은 동양란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있다. aT 화훼공판장 분화온실의 한 점포에서 만난 상인은 “동양란·서양란 할 것 없이 선물용 난에는 스티로폼을 넣지 않고 판매한다”며 “화분 아래에 입자가 굵은 마사토를 넣고 그 위에 난석을 넣어 출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화원에서 선물용 난에 스티로폼을 넣는데, 이는 제대로 된 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무실 등지에서 서양란이 빨리 죽는 건 온습도 관리를 잘못한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 호영재 한국난재배자협회장은 “서양란은 온난한 온도(25℃)에서 잘 자라는데 겨울철 야간이나 주말 등 근무시간이 아닌 때 실내 난방이 꺼진 상황에서 추위에 쉽게 노출된다”며 “스티로폼·포트 등 화분 내부 자재보다는 환경 관리를 잘못한 데서 문제가 생기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정진수 기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