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관세 정치'가 극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기본 관세 10%를 모든 나라에게 부과하고, 각국과의 무역수지를 기준으로 설정한 상호관세도 부과했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몇 가지 분야에 대해 관세유예를 발표하는가 하더니, 곧이어 미국 상무부는 다시 관세를 산정하겠다고 해서 아직 끝이 아님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한국은 25%의 상호관세를 부과 받게 됐고, 6월 3일 선거 직후 곧바로 출범할 새 정부는 외교통상분야에서 이 문제부터 심각하게 풀어야 할 상태다.
트리핀 딜레마. 달러를 기축통화로 쓰면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뜻하는 딜레마다. 학계에는 이론적 가정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거나 정치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또 실천한다. 관세를 지렛대로 미국의 국가부채를 줄이고, 미국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키겠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이 운용하는 자금이 야금야금 유럽이나 아시아로 이탈하고, 미국 10년 물, 20년 물 국채 금리가 오르고 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2025년 4월 현재 트럼프 정부가 기조를 바꿀 기세가 보이진 않는다. 미국의 가장 큰 교역 파트너 중 하나인 중국은 미국이 상호간에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을 한다.
그런데 관세 정치가 과연 미국을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곱씹어야 한다.
먼저 리쇼어링을 통해 새로 각 주의 외곽에 공장을 들여와 봐야 자동화가 많이 진척되어 있는 공장이므로 양질의 신규 고용이 잘 창출되지 않는다. 자동화율이 높을 때 노동자들의 숙련에 대한 필요는 급격히 줄어든다. 더불어 공장을 아무리 들여와도 지역 내 대졸자 일자리는 창출하기 어렵다. R&D, 마케팅 등의 기능은 대도시로 간다는 공간 분업 문제는 해소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공장에서 새로 사람을 뽑더라도 적응이 쉽지 않다. 연간 8만 불을 버는 미국에서 공장 노동보다 좋은 선택지가 개개인에게 많다. 미국은 내수시장이 크기 때문에 서비스 섹터로 가는 게 몸 편하고 맘 편하다. 공장일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중공업의 완력을 써야 하는 일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다. 또한 자동화에 의해 숙련의 필요가 줄어들더라도,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정확하게 매뉴얼을 숙지해야 하는데 이 역시 최소한의 기초 소양을 요구한다. 문해력과 수리적 능력이 고등학교 수준을 잘 마쳐야 한다. 보편적인 중등교육이 잘 돼야 하는데, 미국은 그 문제가 있다. 오바마가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미국 노동자들은 임금이 비쌀 뿐만 아니라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 중국 노동자들보다 잘 훈련되어 있지 않다.
세 번째로 좋은 공장을 들여오기가 힘들다. 리쇼어링을 통해 온전한 산업 생태계를 유도하려면,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현대차 공장처럼 대기업 완성차 조립공장을 짓는 건 기업 관점에서 리스크가 적지만, 공급망 전체를 뜯어 옮기는 것은 어렵고 리스크가 크다. 관세 이슈에서 부품사 이슈가 큰 이유도 공급망의 이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숙련을 높이고 기업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는 질 좋은 일자리는 오히려 공급망의 소부장 기업들에 많다. 이런 기업들은 자동화율이 낮기 때문에 생산직 노동자들의 창의적 역량이 중요하고, 높은 숙련이 필요하다. 그게 가능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50년 가까이 제조업을 방치해 왔기 때문에, 중소기업부터 중견기업까지 공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즉 미국은 제조업 고도화 과정 중 50년을 생략하고, 마치 50년 전 한국이 했던 것처럼 '맨 땅에 헤딩하며' 추격전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리쇼어링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달러의 위력으로 사왔는데,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라는 정책이 된다. 반대로 현재 한국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상황, 즉 제조역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공급망, 노동자의 숙련, R&D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무너지고 방치하면 복구는 다시 '맨 땅에 헤딩하며' 시작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지정학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으로 공격해야 할까? 첨단산업을 고민하는 와중에 함께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