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경제학의 기초를 정립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에서 분업이 노동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18세기 핀 제조 공장을 관찰했다. 핀 제조 공정을 철사 준비, 절단부터 포장까지 18단계로 나누고 열 명의 노동자가 각기 다른 공정에 전문화했더니 1인당 하루 4800개를 생산했다. 하지만 노동자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할 땐 하루 20개 만드는 데 그쳤다. 생산성이 240배나 차이가 난 셈이다. 250년 전 그는 분업으로 인한 생산량 증대는 교환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80년간 일궈온 세계 분업 체제
보호무역 아래선 ‘승자는 없다’
분업의 확산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는 갈수록 상호 의존적이 됐다. 공장 내 분업에서 국가 간 분업으로 확대됐다. 특정 국가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더욱 많이 생산하게 됐고 이는 나라 사이의 교환, 즉 무역이 크게 느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9년 세계 경제는 대공황에 빠졌다. 그러자 1930년 미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강행했다.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속내는 농산물 관세를 높여 농민 표심을 잡는 데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다른 나라가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았고 세계 무역은 갈수록 위축됐다. 1929~1933년 사이 미국의 수출액은 60%가량 급감했다. 전 세계 교역 규모는 25%나 쪼그라들었다. 공황은 더욱 악화됐다.
문제는 무역만 줄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세계 경제는 끼리끼리만 거래하는 블록화가 진행됐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된 독일은 제조업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무역전쟁은 독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제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실업률은 급증했고 경제는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경제의 절망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나치의 ‘아우타르키(Autarkie·자급자족 경제정책)’가 지지받는 토대가 마련됐다. 역사학자는 “스무트-홀리법이 초래한 국제협력 감소가 히틀러 집권의 길을 열었다”고 진단한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경제적 고립주의 확산은 정치적으로는 극단주의를 싹트게 하고 결국은 일부 국가에서 군사적 모험주의를 감행하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보호무역주의 실패와 전쟁 등을 교훈 삼아 세계 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 체제를 공고히 했다.
그런데 2025년 갑자기 보호무역의 막이 다시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무역 불균형을 뜯어고치겠다며 관세 전쟁을 촉발했다. 95년 전처럼 상대 국가는 강력히 반발했고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금융시장이 크게 ‘발작’하자 미국은 일단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관세를 90일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관세 전쟁 전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에서 예외적으로 호조를 보였고, 중국 경제는 내수 부진, 부동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요즘 미국에선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라는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중국에선 유일한 성장 동력인 수출마저 감소하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서로 엄청난 고통을 참으며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시간은 흐르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관세 전쟁에서 패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취임 후 80일을 넘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42%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도 등장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역사적으로 볼 때 관세 전쟁에서 승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패자만 있을 뿐이다. 자유무역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가 무너졌다면 자유 무역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