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건설자재 수급을 안정화겠다며 발 벗고 나선 가운데,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가 시멘트 가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시멘트 제작에 쓰는 유연탄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에 시멘트 가격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멘트업계는 지난해 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올라 가격 인하가 불가능하다고 맞선다.
시멘트가격은 지난 3년간 네 차례 올랐다. 건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종 벌크시멘트 톤당 가격은 2014년 7월부터 동결되다 2021년 7월 7만 8800원(5%), 2022년 4월 9만 800원(18%), 2022년 11월 10만 4800원(13%), 지난해 10월 11만 2000원(7%)으로 각각 인상됐다. 국내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씨앤이는 지난해 하반기 시멘트 가격을 톤당 1만 4800원(14%) 인상하는 안을 발표했다가 건설업계, 시멘트업계와 협의 끝에 7200원(7%) 올렸다.
#전기요금 인상에 시멘트업계 울상
건설업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지난 24일 계약전력 300kW 이상인 대용량 고객의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1kW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인상했다.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계약전력 300kW 미만인 산업용(갑) 전기요금은 5.2%만 올렸다. 한전은 “누적된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하되 물가와 서민 경제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인상 배경을 밝혔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소식에 시멘트업계는 울상이다. 제조 원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멘트는 잘게 부순 석회석과 부재료를 초고온으로 가열(소성)한 뒤 냉각해 다시 잘게 부수는 과정을 거쳐 만든다. 통상 제조 원가에서 전력비는 20%, 소성 연료인 유연탄은 3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원가 구조상 전력비와 연료비 비중이 다른 제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셈이다.
한 시멘트사 관계자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올해 생산량 기준 제조 원가가 100억 원 넘게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른 시멘트사 관계자는 “지난해 시멘트 가격 인상 이후 원가에서 30%가량을 차지하는 전력비가 두 차례 올랐다. 이번 인상으로만 수백억 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데 가격 압박을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결국 공은 정부로 넘어가
이와 달리 건설업계는 올해 6월부터 시멘트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시멘트 제조 원가에서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유연탄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국내 유입량이 가장 많은 호주 뉴캐슬산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10월 톤당 107.75달러에서 올해 10월 89.79달러로 17.96달러(17%) 내렸다. 건설업계는 지난 6월과 9월 유연탄 가격 변동에 따른 시멘트 가격 협상을 요청했지만 시멘트업계는 응하지 않았다.
건설업계 자재 담당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 관계자는 “직전 시멘트 가격 협상에서 시멘트 제조사가 제시한 산출식을 적용했을 때 시멘트가격은 유연탄 가격 인하에 따라 톤당 1만 1216원, 이번 전기요금 인상분을 반영하더라도 톤당 9000원가량을 인하해야 한다”며 “올해 2회에 걸쳐서 시멘트사에 가격 협상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멘트업계는 건설업계의 가격 인하 요구에 난색을 표한다. 앞서의 한 시멘트사 관계자는 “지난 시멘트 가격 인상에서 업계가 요구한 금액이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기존 원가 인상 요소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전기요금이 인상돼 가격 인하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멘트사 관계자는 “할인을 적용받는 고객을 포함하면 시장에서 판매되는 실제 시멘트 가격은 평균 9만 5000원 수준이다. 해외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인데, 힘이 없어서 당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협상의 공은 결국 정부로 넘어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4일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를 위한 민관협의체(수급 안정화 협의체)를 출범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일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수급 안정화 협의체를 만들고 주요 건설 자재가 수요자와 공급자 간 자율 협의를 통해 적정 가격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앞선 수급 안정화 협의체 착수회의에는 건설자재직협의회와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회의는 오는 4일로 예정됐다.
국토부 건설산업과 관계자는 “건설 자재 가격은 원칙적으로 개별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정부가 협의체를 마련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자주 만나서 가격 협상이 잘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시멘트 가격 인상 협상 때처럼 가격 결정 권한이 있는 시멘트 제조업체들의 참여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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