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세상이 시끄러워서 도대체 연구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동안 수학자로서 일에 집중하면서 즐겁게 살아왔는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평온했던 나의 가슴에 풍랑을 일으킨다. 뉴스를 볼 때마다 기분이 상해서 요즘에는 잘 보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일부 국민들의 극우화가 더 걱정이다.
정치에는 건전한 보수 정당과 세력이 꼭 필요하다. 법과 원칙을 우선적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좌우의 균형이 잘 맞아야 좋은 나라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 자신도 그동안 좌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일부 극우화된 사람들은 정상적인 좌우 간의 대립을 넘어서 가짜뉴스와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그 대상에 대해 분노한다.
파시즘은 증오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근간의 우리 상황은 예전에 이탈리아와 독일이 파시즘으로 치닫던 상황과 유사하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지 세계적으로 극우화가 확대되는 추세다. 히틀러를 닮고 싶어하는 듯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로 인하여 미국은 조금씩 파시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을 통한 독재정권 수립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나마 미국보다는 나은 것인가? 그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는 그가 임기 중에 벌인 의대 정원 증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러시아와 북한의 밀월, 대중국 무역 적자, 국가 재정 악화,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과 같은 정책들의 실패를 다 뛰어넘는 거대한 실패작이자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대사건이다.
역사 흐름 바꾼 박왕자 피살 사건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우리 내부의 경제적,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태도로 구별되는 경향이 있다. 보수는 대체로 북한에 대해 강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 수십년간 군사정권하에서 살아온 경험 때문일 것이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것의 당위성을 북한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찾았기 때문에 그런 세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소위 종북좌파의 세력이 매우 크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래서 나라가 걱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북좌파라고 믿고 싶은)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커지게 된다.
세상의 큰 사건들 중에는 작은 일이 조금씩 커진 결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판단 착오를 잘 일으키던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좋은 칼잡이라 여겼는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중용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최순실이 없었다면 윤석열도 없었다. 더 따져 올라가보면 최순실-정윤회-최태민-문세광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끊어지거나 이와 연관된 곁가지 사람이 없었다면 현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에 금강산 관광객 중 박왕자라는 분이 북한군 병사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분의 행동은 정말 미스터리다. 금강산 관광객들은 귀가 따갑도록 주의 사항을 듣게 돼 있는데 이분은 오전 4시 조금 넘은 시각에 호텔을 빠져나와서 북한의 군사지역으로 철망을 넘어 들어간다. 그러고는 5시 전후에 북한 병사가 뒤에서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한반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라는 시점이 묘하다. 10년간 유지됐던 남북 간의 해빙 분위기가 이 사건 하나로 인해 다시 꽁꽁 얼어붙는다. 금강산 방문은 그때 멈춘 이후 지금까지 재개되지 못했고 남북 간의 긴장과 상호 비방은 심해져갔다. 이런 상황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이어졌고 후임 대통령인 박근혜는 돌연 개성공단의 폐쇄를 선언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은 우연한 일이 주변 상황과 겹치면서 기원하게 된다.
국민 계몽으로 이어지는 효과 기대
좋은 일은 좋지 않은 일을 부르고, 좋지 않은 일은 좋은 일을 부르는 법이다. 계엄 사태로 일어난 혼란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결국 국민의 계몽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올 것을 기대해본다. 치열한 갈등과 혼란을 겪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치열하게 다투고 있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고,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도 생기면서 결국 새로운 각성을 얻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들이 선포한 것은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이 어느 정도 통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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