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의 한국 사회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그중 하나는 소위 주류 보수 정당이었던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걱정이다. 그들은 과연 ‘부정선거론’을 필두로 한 극우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는 것일까, 아니면 믿지 않으면서도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음모론의 편을 드는 것일까.
그들의 입장이 어느 쪽이든 간에 앞으로도 음모론적인 애매한 행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야 하는데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반(反)중국 등 안티 외에 생산적 의제를 개발할 의지가 없어 보이며,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우파 정치에서 음모론을 활용해 성공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해외 사례를 차용하며 같은 전략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런 세력들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이런 세력들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첫째, 그들은 시장경제의 적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실제로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몇가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주유소의 기름에 물이 섞였다고 믿기 시작하면 불신이 퍼지면서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 음모론자들은 이런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능숙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수십년간 연구한 관세의 경제적 폐해에 대한 분석도 음모론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잡힌다는 전통적 경제이론을 무시하고, 오히려 금리를 낮추면 물가가 안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2019년 이후 중앙은행 총재를 네 차례나 교체했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포장되면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점이다. 음모론적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나, 시장경제의 기반은 점진적으로 침식될 것이다.
둘째, 그들은 시장을 불확실성의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 음모론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논리적·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포장해 유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통계, 그래프, 심지어 논문까지 동원해 더욱 그럴듯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보자. 이 의혹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수도권 일부 지역의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득표 비율이 각각 63%와 36%로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근거로는 미국 미시간대 월터 미베인 교수가 발표한 “한국 사전투표 조작 가능성이 27.9%”라는 내용의 논문이 제시되었다.
음모론적 정치인은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다.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적절한 통계 조작을 통해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에 능숙하다. 문제는 이런 그럴듯한 음모론이 사회 전반에 범람하면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모론의 기반은 분노이고 분노가 지배하는 사회의 침묵하는 다수는 피로감에 빠진다. 사람들은 점점 더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 결과 소비와 투자는 위축된다.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결국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그들이 만들어낸 혼란은 일반적인 경제위기와는 차원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금융위기와 달리 회복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돌아보면 정책당국의 실수, 재벌의 과잉투자, 해외 자본의 탈출 등이 겹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국민들은 구조조정이라는 희생을 감수하고,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며 한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모두가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회복되는 데 4~5년이 걸렸다.
그러나 계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상황이 다르다. 외신에서는 윤석열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 킬러”라고까지 표현했지만, 국가 정상화를 방해하는 음모론적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이들은 음모론의 정치적 효능감을 실감하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정치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정권에서는 마약 퇴치를 명분으로 경찰과 민간인에 의한 초법적 처형(Extrajudicial Killings)까지 일어났다. 우리는 음모론적 정치인의 위험성을 가볍게 봐서도, 한국 사회가 음모론에 취약하지 않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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