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예대상도 어대유?’
인기 있는 충청도 사투리가 아니다. 어찌 보면 다소 씁쓸할 수도 있는 지상파 예능계의 2024년 연말 자화상이다. 유독 매체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올해 지상파 예능, 이를 결산하자면 다시 한번 ‘어대유’ 키워드가 떠오른다.
‘어대유’는 ‘어차피 대상은 유재석’의 준말이다. 2010년 중반 이후 지상파 예능의 정체 현상이 계속되자 연말마다 유재석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연말 ‘연예대상’이나 ‘방송연예대상’을 준비 중인 지상파 3사 채널들은 모두 후보를 발표하고 있다. KBS는 최근 유재석, 전현무, 류수영, 이찬원, 김종민을 후보로 발표했고, MBC는 아직 후보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유재석, 전현무, 기안84, 김구라, 안정환 등이 후보로 꼽힌다.
SBS 역시 후보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유재석, 탁재훈, 배성재, 서장훈, 김구라, 김종국 등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여기서 3사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유재석’이다.
지상파 3사 모두 올해를 결산했을 때 새로운 예능 형식이나 출연자를 발굴하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KBS는 기존 장수 라인업에 지난해 부활한 ‘개그콘서트’와 AI 음악쇼 ‘싱크로유’ 정도가 합류했고, MBC는 기존 라인업에 스핀오프 스타일의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시골마을 이장우’ 정도가 합류했다.
SBS 역시 기존 라인업에 유재석의 새 예능 ‘틈만나면,’ 정도가 합류했다. 지상파가 이렇게 정체를 거듭한 사이 방송 예능의 주도권은 뉴미디어에게 넘어갔다. 올해 가장 화제가 된 프로그램으로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나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등이 꼽히고 있으며, 지상파의 단골 아이템이던 토크 프로그램은 모두 연예인들의 유튜브 채널에 잠식당했다.
이런 와중에 유재석은 지상파 3사로 하여금, 그나마 연말에 대상을 주면 시상식 전체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는 안전한 보험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유재석은 올해에도 SBS ‘런닝맨’, MBC ‘놀면 뭐하니?’,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등 고정 예능들은 물론 SBS ‘틈만나면,’과 KBS2 ‘싱크로유’, tvN ‘아파트404’ 등의 새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뉴미디어에도 활발해 디즈니플러스의 ‘더 존:버텨야 산다’를 올해 시즌 3까지 끌고 왔으며, 유튜브 예능 ‘핑계고’와 ‘풍향고’를 히트시켰다. 특히 격의 없고 제한 없는 토크를 추구하는 ‘핑계고’는 스타들의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부상 중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상파 3사의 모든 연예대상이 다시 유재석만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부대나 새로운 술을 채우는데 소홀했던 지상파의 씁쓸한 현주소이기도 하다.
유재석은 1991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한 이후 2005년 ‘해피투게더 2’로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이후 거의 매년 단골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려왔다. 2005년 이후 KBS에서 총 두 차례, MBC에서 공동수상을 합쳐 총 6차례, SBS에서 공동수상을 합쳐 총 6차례 도합 14개의 대상을 탔다.
그의 대상이 지상파에서 한 차례도 없었던 시기를 따져도 2013, 2017, 2018, 2023년 등으로 극히 드물다. 지난해 모두 유재석을 한차례 쉬었던 지상파가 이제 다시 유재석을 쳐다보는 일은 그래서 필수 불가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1972년생인 유재석은 내년이면 만으로 벌써 53세. 50대 중반으로 나아가는 데뷔 34년 차 예능인에게 모두 명운을 걸 정도로 대한민국 방송가의 예능 프로그램 기반은 취약해졌다. 그래서 이번 연말 다시 부는 시상식 ‘어대유’ 바람은 한편으로는 한국 예능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블랙유머’일 수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재석이 3사 모두에서 대상 후보로 언급되는 상황은 그만큼 유재석이 활약을 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유재석 외에는’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라며 “올해에만 해도 모든 예능의 중심을 OTT나 유튜브 예능 등에 빼앗겼다. 그 사이 지상파 예능은 하던 포맷, 출연하던 사람만이 등장하고 말았다”고 짚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지 않고 시상식을 계속하는 것은, 결국 지상파 예능 시상식의 권위를 스스로 줄이는 결과밖에 낳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