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행 28일째다. 이번 여행은 아드리아해 인접 국가를 다녔다. 전쟁과 식민을 겪고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지역들이다. 유럽지역에 올 때마다 늘 놀라는 것은 국경을 넘는 것이 간편하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이 아니라 여러 인종과 언어들이 뒤섞이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머리 색이 하나가 아니고 피부색도 다 다르다. 트램이나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 여러 언어가 뒤섞여 통화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눈으로 보여지는 다양성이 내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여행 중에도 우리의 정치 상황이 심상치 않아 계엄과 내란, 탄핵과 구속 상황 소식들과 함께 다녔다.
지금은 두브로브니크에 와있다. 크로아티아의 남부지역이다. 수도인 자그레브에 먼저 갔다가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 도시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자그레브는 발전 중이었고 몇 년 전의 큰 지진으로 도시 곳곳이 보수 중이었다. 남쪽으로 내려와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니 붉은 지붕과 흰 성벽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영화 <왕자의 게임>의 실제 촬영지이기도 했던 올드타운은 성벽과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Dubrovačke gradske zidine)은 약 2km에 걸쳐 올드타운을 감싸고 있는 성벽이다. 성벽 투어 시작 지점과 필레 게이트 근처의 입구를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가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성벽은 최고 25m 높이, 가장 두꺼운 곳의 두께는 6m에 이른다. 육지 쪽에는 해자를 파 접근을 어렵게 했다. 성벽 곳곳에는 탑과 요새를 배치했는데,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북서쪽에 있는 민체타 탑(Kula Minčeta)이다.
성벽 안 마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도원도 그대로 있어서 성벽 투어 중 수도원이 가꾸는 밭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지역 사람들이 사는 올드타운은 관광객에게 물건이나 숙소만 제공하는 다른 나라의 올드타운과 다르게 활기가 있었다. 지역민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저렴하게 팔고 지역 출신 극작가의 극장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잘 차려입고 방문하고 있었다. 올드타운이 관광용 상품으로 느껴지지 않고 역사를 함께 나누는 것처럼 다가왔다.
우리의 방문 시기가 일치하게 되어 참가하게 된 성 블라이세 축제는 지역의 축제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한 흥겨운 시간이었다. 성안에 있는 성 블라이세 성당(Crkva sv. Vlaha u Dubrovniku)은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를 기려서 만든 성당이다.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참사회원인 스토이코라는 사람이 은발의 노인, 성 블라이세의 환영을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성 블라이세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계략을 써서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할 계획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이 도시를 보호하고자 천국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환영의 도움으로 인해 두브로브니크를 구할 수 있었다. 매년 2월 3일에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는 2009년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축제(Festivity of Saint Blaise, the patron of Dubrovnik)’라는 이름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월 3일 올드타운은 아침부터 축포가 울리고 거리에 음악 소리가 퍼지고 공중에서는 성당의 종소리가 야단스럽게 퍼졌다. 머물던 숙소가 이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성벽의 입구 필레게이트 앞이었다. 마지막 남은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요란스런 축제의 음악 소리가 우리를 재촉했다. 거리로 나서니 버스가 서는 큰 도로에서 지역 사람들은 마을 깃발로 보이는 깃발을 들고 전통 복장을 하고 행렬하고 있었다. 검은색과 빨강 모자, 흰 타이즈와 흰 레이스 스카프 같은 복장이 아름다웠다. 두브로브니크의 사람들은 거인족이라고 할 만큼 키가 커서 전통 복장을 한 모습이 까마득한 중세의 전사처럼 느껴졌다. 축제는 2월 2일 축제 전야 미사와 아침 미사 같은 천주교 행사와 마을 행사가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마지막에는 신부들이 반짝이는 은빛 성물을 들고 마을 사람에게 축복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나도 그 행렬에 섞여서 신부들의 축복을 받았다. 여행이 잘 마무리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중세의 요새였던 올드타운을 걷다 보면 폭격을 당했던 집에 표시해 두었다. 성에서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과 몬테네그로 영토방위군이 도시를 포위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두브로브니크를 세르비아인의 지배 아래 둘 계획이었다. 도시 근교를 약탈하고 세계유산에 포격을 퍼붓는 행위에 비판이 쏟아졌다. 유네스코는 두브로브니크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고, EEC는 유보적인 태도를 버리고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그러나 유고 측 포위는 7개월 동안 이어졌고 크로아티아군은 끝까지 싸워 도시를 지켜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쟁을 치른 지 35년밖에 안 된 지역인 것이다. 올드타운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스르지산 정상에는 폭격으로 무너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드리아해가 내려다보이는 성곽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여행의 마지막 저녁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도 지금 전쟁 못지않게 민주적 제도와 절차에 공격을 받고 있다.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아는 대통령이 뻔뻔스럽게 대놓고 법에 이기적인 폭탄을 퍼붓고 있다. 이 전쟁은 끈기와 결속과 올바름으로 막아낼 것이다. 전쟁은 함께 싸워 이겨낸 사람들에게 결속감과 자긍심을 남긴다. 성 블라이세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이란 낯선 것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 낯선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여행에서 배운 것들 그것으로 국경을 넘나들 듯이 생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될 것이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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