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오기 전에 도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세 군데의 전시장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마지막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회고전 ‘소리를 보다, 시간을 듣다’를 보기 위해 도쿄도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장까지는 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 주변에 아기자기한 카페나 잡화점이 많아서 발길이 닿는 대로 골목을 걸어보기로 하고 동네를 기웃거렸다.
걷다보니 한 집에서 인부들이 짐을 다 빼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살던 사람이 사망했는지, 집의 짐을 모두 정리하는 것 같았다. 30년은 되어 보이는 냉장고와 세탁조와 탈수조가 따로 있는 낡은 세탁기가 집 앞에 놓였고, 2층 창문을 통해 천으로 동여맨 옷가지와 이불을 한 인부가 밀어내고 있었다. 다른 인부들은 사다리를 잡고 끈에 묶여 떨어지는 옷가지와 이불더미를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많은 짐과 흔적을 남겨놓는가. 태어나는 순간 한 존재로 인해 파생되는 물건들과 살아가면서 남기는 흔적들과 사물, 관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무(無)로 사라지는 육체. 부질없이 보이면서도 동시에 질기고 무거운 것이 인생이라는 회한이 들었다.
지도 앱을 켜고 전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시장에서 다시금 인간의 생을 떠올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호흡과 공기가 음으로 치환되는 사람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각과 음률은 하나의 작품(opus)이 되어 한 공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절대다수는 이런 기회조차 없이 빈집을 남기고 생을 끝마치게 될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왔던 길을 가늠해가며 걷다가 우연히 빈집을 발견했다. 이미 많이 허물어져 있으니 아까 본 집과는 다른 집이리라. 불과 20분 거리에 두 채의 집이 비워지고 비워졌다. 한동안 집 앞에 서서 집 안을 채웠을 물건들, 불빛들을 상상해 보았다.
생이란 시작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 내가 떠나고 남을 빈집엔 어떤 것들이 남아 있게 될지, 조금 씁쓸해졌다. 그러나 생을 꼭 작품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현재에 충실히 살면서 나만의 것(work)을 성실하게 채워가며 산다면, 모든 순간에 의의는 있다. 내가 사라지고 남을 빈집을 상상한다. 빈집의 공허는 채워졌던 순간들이 자유로워진 결과이고 다른 누군가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