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무너진 인간…연결·공감으로 희망 찾다

2025-02-06

뉴욕 봉쇄령 속 소설가·대학생

앵무새 키우며 불편한 동거 시작

‘접촉이 위협’ 간주된 시절

서로의 유대로 고립 벗는 위안 깨달아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민승남 옮김|열린책들|320쪽|1만6800원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었던 2020년 봄, 뉴욕은 봉쇄령으로 인해 고요한 침묵에 잠긴다. 맨해튼에 사는 소설가인 화자는 지인의 부탁으로 캘리포니아로 떠난 한 부부의 반려 앵무새 ‘유레카’를 돌보게 된다. 원래는 한 대학생이 맡기로 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진 탓에 화자가 급히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관계와 접촉이 단절된 시기, 화자는 유레카를 돌보는 일이 뜻밖의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유레카가 느낀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나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그 기이하고 불안했던 시기의 나에겐 유레카와 함께 있을 때 시간이 제일 빨리 지나갔다.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는 뉴욕에 자원봉사를 온 한 의사가 코로나 환자들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거처를 구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유레카가 있는 아파트로 아예 거처를 옮긴다. 그렇게 새롭게 정착한 공간에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중, 유레카를 돌보기로 했다가 돌연 사라졌던 대학생 ‘베치’가 아무런 예고 없이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미국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아홉 번째 작품인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흔들리던 일상의 조각들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극적인 사건이나 긴박한 전개 대신, 팬데믹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화자는 유레카를 돌보겠다는 약속을 무책임하게 어기고 떠났다가 갑작스럽게 다시 나타난 베치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베치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듯이 행동하며 야생동물인 유레카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일의 잔인함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애초에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새를 위해 가짜 정글을 꾸며 놨어요. 이 그림이 유레카를 야생에서 떼어 내서 감방에 가둔 걸 보상할 수 있는 것처럼…유레카에겐 이 방 전체가 새장 속의 새장 속의 새장일 뿐이에요.” 그는 베치를 이렇게 묘사한다. “인간 혐오자야. 맨스플레인(여성에게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남자들의 행동)도 하고. 새싹 단계의 에코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도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우연히 시작된 동거를 받아들이고, 최대한 베치와 마주치지 않으려 한산한 공원을 산책하는 일상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자전거를 탄 괴한과 마주친다. 그 남자는 보행자 전용 광장에서 그를 향해 돌진하며 “아줌마, 겁도 없어?”라고 조롱한 뒤 또다시 위협을 가한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지러움으로 외출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은 베치와의 관계를 조금씩 바꿔 놓는다. 베치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고, 화자가 잘 먹는 아이스크림을 네 통이나 사 오며 서툰 방식으로 배려를 표현한다. 그 작은 관심들이 쌓이며 둘 사이에는 서서히 유대감과 친밀함이 싹트고 베치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소설의 원제는 이다. 이때의 ‘취약함’은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드러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연약함을 포착하면서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연결과 공감의 가능성까지 담아내는 이중적인 의미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 사이에는 불신과 적대감이 팽배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두려움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의존하는 존재인지, 관계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사건보다 일상의 미세한 순간들을 통해 그러한 변화의 결을 포착한다.

화자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무심코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가 친하게 지냈던 바리스타에게 날카로운 질책을 받는다. 타인과의 근접과 접촉이 위협으로 간주되던 시절, 이 작은 사건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깊은 심리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감염의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이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관계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취약함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취약함이야말로 진정한 연결과 공감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팬데믹의 고립 속에서 화자는 유레카라는 작은 존재를 돌보며 위안을 얻고, 뜻밖의 동거인 베치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서로가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마음을 내어주고 의지할 수 있었다. “모든 동물들, 아주 작은 것들에게까지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그 동물들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들인지, 모든 생명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취약성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팬데믹이라는 극한의 상황은 모두를 ‘취약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그 취약함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연결될 가능성 또한 발견하게 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뿐만 아니라, 다시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한편 이야기 전개 사이사이에 스타카토처럼 펼쳐지는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작가의 단상들과 과거에 대한 회고는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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