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부활

2025-02-05

택배가 왔다. 얼마 전 주문한 침대 독서등이다. 계속 아쉬워하던 것이라 얼른 포장을 뜯었다. 설치하려 하는데 다섯 살 딸아이가 낚아챈다. “이게 뭐야?” 전원을 켜 보더니 한껏 신난 아이는 불 꺼진 창고로 뛰어든다. “우와~

까르르” 빨리 달라고 재촉해도 좀체 나오지를 않는다. 언뜻 스치는 생각. 그래, 재미있으면 된 거지. 왜 물건의 용도만을 생각하고 아이를 보챌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서는 소녀의 여러 감정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특히 ‘기쁨’이는 태어날 때부터 소녀를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된 소녀는 차츰 ‘불안’이나 ‘부끄러움’ 같은 침습적 감정에 매몰된다. 입지를 잃어가는 기쁨이의 한탄.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나봐. 기쁨을 누리지 못해.” 수학자에게 기쁨의 상실은 사실, 실존적 위협이다. 연구 동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위상수학의 창시자 앙리 푸앵카레(1854~1912)의 지적처럼, “아름답기에 기쁨이 있고, 기쁘기에 연구”하는 것이 수학자이다. 영락없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기쁨을 향한 길이 험난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험난할 것이다. 이때 ‘즐거움’이 우리를 이끌어 준다. 눈썰매장의 풍경과도 같다. 걸음마나 겨우 뗐을까 싶은 아이들이 썰매를 메고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시지프스가 따로 없다. 얼굴이 벌개져 숨을 내쉬지만 누구보다 즐거워 보인다. 언덕 끝의 스릴과 쾌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구도 마찬가지. 고통과 좌절, 흥분, 기쁨의 사이클이다. 게다가 아주 긴 준비 단계를 보내야 한다. 어둠 속 심연에서의 시간. 그럼에도 즐거움이 있다. 바닥으로의 침잠은 오히려 멋진 탐사의 경험이기에. 숨이 터질 것 같아도 마침내 떠오를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기쁨’이의 충고이기도 하다. “즐기고 있다면, 아직 진 게 아니야.” 오늘 하루도 지지 않기를, 축제이기를.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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