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시간에 쫓겨 출근하고, 진료실에서 환자와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지쳐 귀가하는 쳇바퀴 돌 듯, 무감각한 하루를 보낸다. 누구나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더 큰 만족과 성공을 원하지만 늘 틀에 박혀 가슴 뛰는 일이 없다고 불평한다. 새해에도 행복하길 꿈꾸지만 새로운 활력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삶 속에서 자아실현을 하거나 고민하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2014년도 개봉한 ‘꾸뻬씨의 행복 여행’은 정신과 의사인 프랑수아 를로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로 피터 첼섬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다. 주인공인 헥터(꾸뻬)는 파리의 정신과 의사로 유능하고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매일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하는 우울하고 불평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갖고 있고 큰 불행을 겪지 않는 사람들인데도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도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이제는 자신이 환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행복이 무엇이며 자신도 행복할 수 있는 ‘행복의 비밀’을 찾아 세계여행에 나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찾아간다.
첫 여행지로 중국을 선택한 헥터는 공항에서 우연히 사업가인 에드워드라는 남자를 만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는 사람으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웃기는 소리”라고 말하자 헥터는 “행복하세요?”라고 묻자 “나처럼 바쁘면 그걸 생각할 시간이 없소. 일 중독, 이혼남이지만 목표를 정해서 달리다 보면 다 잊게 돼. 행복한 은퇴는 한가지뿐이요” “그게 뭐지요?” “은퇴 안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를 통해 “남과 비교하는 것은 당신의 행복을 망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돈이나 지위를 갖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행복이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와 같은 교훈을 얻는다.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버린 고연봉자들과 가난하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여인들을 만나면서 행복에 대한 관점의 중요성을 느낀다. 특히 “첫 번째 실수는 행복을 삶의 목표라고 믿는 데 있다”라고 한 노승의 말은 행복을 찾는 여행에 큰 활력소가 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의사 장 미셸, 정당하지 않지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약상 알프레도, 부인 몰래 외도를 하는 것이 일상의 행복인 호텔 웨이터,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 암 환자, 언제나 환하게 웃는 아이들 등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헥터는 각자에게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개인적인 의미를 얘기한다. 노상강도에게 납치를 당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며, 행복이란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는 또 다른 교훈을 얻는다.
세계를 선도하며 물질적인 풍요가 넘쳐나는 미국에서 행복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삶의 이면은 가족과의 불화, 질투와 경쟁, 타인에 대한 무관심, 젊은이들의 정체성 혼란이 가득하고 정신과 환자도 많은 것을 본다. 헥터의 대학 친구인 아녜스의 도움으로 감정 표현에 따라 뇌 부위의 색깔이 변하는 연구를 하는 행복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던칸 박사를 만나 행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임을 알게 된다. 헥터는 자신의 행복이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관계와 경험에 대한 감사로 발전시키는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가 환자의 문제를 즐겁게 해결해주고 자신과 타인과의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헥터는 여행 내내 만나는 가족,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생을 만들며 서로가 연결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 돌고 돌아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더 깊은 소속감과 행복을 준다고 얘기한다.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행복은 이미 내 곁에 존재하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과 죽음이 곁에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회복력과 감사와 더 깊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이고, 경쟁이 치열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다이나믹한 사회다. 이로 인해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계층 간의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자랑과 화려함으로 장식된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수백 명의 행복한 모습과 비교해 나름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초라해져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고 부자가 아니면 가난한 삶이며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위선적으로 행복한 척하거나 일상을 과장하려는 강박감을 갖게 된다.
김난도 교수의 ‘2025 트렌드 코리아’에서 제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아보하’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준말로 오늘 하루를 무난하게 무탈하게 큰 사고 없이 잘 넘겼으면 그걸로 됐다는 뜻으로 특별한 좋은 일이 없어도 오늘은, 아주 보통의 오늘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아보하’는 서울대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이란 책에 나오는 ‘아보행’을 참고했다고 한다. 책의 서문에는 “우리는 늘 특별한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라고 했다.
몸이 아프거나 고군분투하다 낙심되었을 때 또 어떤 이유로 늘 해오던 일상을 할 수 없을 때,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이 지나고 대부분의 일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특별히 아픈 곳이 없고 큰 고민이 없는 하루, 그 하루가 은혜이고 축복이며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무탈한 하루, 어쩌면 내놓을 것 없는 하루, 소소한 하루가 눈물 나게 그리운 하루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타성에 젖어 본인이 껍데기처럼 의미 없는 평범한 날을 보낸다고 자책할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며 행복임에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매일의 삶이 특별하거나 축제일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은 화려한 성취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하루 속에서 작은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는데 있다.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돌아보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오늘 보통의 하루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보하’의 행복 찾기를 실천해 보면 숨겨져 있는 행복을 어디선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은 유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한번 감상하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오늘도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 중인 우리 모두, 변화된 헥터의 모습과 같이 행복에 대한 각자의 교훈을 얻어 오늘도 무탈하길, 내일도 평범하길, 소소한 하루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며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더 멋지고 감사한 하루를 보내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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