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 ‘수도권 습격’… 곳곳 대규모 출몰에 민원 급증
“창문 못 열 지경” “차에 다닥다닥”
서울서만 9296건 접수… 2024년 2배
계양산 일원 뒤덮어 불편 호소도
바닥 사체 가득… “아스팔트인 줄”
혐오감 주지만 ‘익충’으로 분류돼
자치구마다 친환경 방제에 총력
직장인 박모(32)씨는 며칠 전 회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놀라 가슴을 부여잡았다. 화장실 벽면과 변기 등 온갖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벌레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회사가 17층에 있는데도 누가 열어둔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다”며 “도저히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아래층 화장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하는 분도 당혹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박씨가 화장실에서 목격한 건 일명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무리였다.

휴일인 29일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러브버그가 대규모로 출몰해 시민 불편이 컸다.
2022년 서울과 경기 고양시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러브버그는 사람을 물거나 질병을 옮기지 않고 유충일 땐 썩은 잡초를 먹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성충이 되면 수액을 먹으며 식물의 수분을 도와 ‘익충’(益蟲)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짝짓기할 때 암수가 꼬리를 맞대고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시민들은 해충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야외 활동이나 운전 중 달라붙는 러브버그가 혐오스럽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사는 문모(26)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뒀는데 러브버그가 10쌍 넘게 붙어 있어 눈을 감고 차에 탔다”며 “주행 중에도 창문에 기어 올라와서 토할 뻔했는데 못 본 척하고 운전했다”고 했다. 강모(28)씨도 “달리는 차에도 짝지은 러브버그가 날아온다”며 “걸어 다닐 때 팔에 달라붙기도 해서 불쾌했다”고 전했다.
인천에서는 최근 러브버그가 폭발적인 개체 수로 늘어 계양산 일원을 뒤덮어 등산객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 오전 계양산 정상에서는 빽빽하게 날아다니는 러브버그 무리로 시야가 제한될 정도였다는 목격담이 전해졌다. 다수 누리꾼이 올린 사진과 영상을 보면, 등산로 울타리마다 까만 벌레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또 바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체가 쌓여 아스팔트 도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러브버그가 산 정상을 점유했다.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계양산뿐만이 아니다. 전날 인천 서구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싸이 공연에 참석한 한 누리꾼은 ‘필요한 준비물’로 ‘벌레 퇴치 팔찌’를 꼽으며 “러브버그가 미쳤다”고 했다. 인천시와 관내 보건소에는 “러브버그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한다”는 등 불편 민원이 하루 100건가량 접수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여러 곤충을 함께 없애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적 방역보다 방충망 정비나 살수 등 친환경 예방으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러브버그와 동양하루살이 등 유행성 생활 불쾌 곤충에 대해 친환경 방제에 나서고 있다. 시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2022년 4418건에서 지난해 9296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시는 대표적으로 LED 빛을 사용해 러브버그를 유인해 잡는 친환경 광원 포집기를 은평구 백련산 일대에 설치해 가동 중이다. 관악구와 마포구, 성북구, 양천구 등 시 자치구들은 러브버그 주요 발생지에 물을 뿌리는 친환경 살수 방역을 하고 있다. 구로구의 경우엔 친환경 살수 방식을 우선하되 필요시엔 제한적으로 화학적 방제를 병행한다는 입장이다.
윤준호·소진영·박진영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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