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선원취업(E-10)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인도네시아 출신 30대 이주노동자 A씨는 일을 시작한 지 18일 만에 선착장에서 게를 잡은 통발을 하역하다가 배에서 떨어져 병원 치료를 받았다. 선주와 회사는 부상으로 치료중인 A씨에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라고 압박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위해 거금 1억8000만루피아(약 1555만원)를 마련해 현지 브로커에게 지불하고 들어온 상태였다. A씨는 여권과 신분증을 빼앗긴 채 일하던 선박에서 쫓겨났다.
치료를 마친 A씨는 자동차 제조업 공장에 취업했지만, 본래 근무지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출입국 단속에 걸려 결국 강제 출국을 당했다. 취업 비자를 갖고 한국에 온 지 1년5개월 만이었다.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와 불법취업으로 내몰려 적발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외국인 불법취업 적발 건수는 2만487건으로 2021년 1950건과 비교해 3년만에 10.5배 규모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제조업이 8855건(43%)으로 가장 많았고, 음식·숙박(4455건), 마사지(1593건), 농림축산(1363건), 건설(1112건) 등 순이었다.
전체 미등록 이민자 수는 40만명 내외로, 2021~2024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민자 수 증가 때문에 외국인 불법취업 적발이 증가한 건 아니란 뜻이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 단속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성과처럼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도 법무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이유로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을 예고한 상태다.
이주노동자 비자의 엄격한 사업장 변경 조건과 구직 기간 등이 이들을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때 3개월 이내에 구직하도록 규정한다. 또 비자기간 3년이 만료되기 한달 전까지 일하는 사업장에서 취업활동 기간을 1년10개월 연장해 주지 않으면 출국조치 된다. 구직기간 3개월 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출국 통보를 받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수는 2021년 2042명에서 2024년 2805명으로 37.3% 증가했다.
2022년 12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씨는 2025년 2월 용접일을 하다 무거운 용접재료에 다리가 깔려 대퇴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수술 후 몇개월 간 다리에 깁스를 한 A씨의 무릎 관절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는 취업활동 기간 만료 한달 전까지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몸이 회복되기 전 무리해서 구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춘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국가와 기업은 이주노동자들을 사람이 아닌 기계나 노예처럼 노동력으로만 대하고 있다”며 “법무부의 무분별한 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없앨 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용허가제 등을 철폐하고 자유로운 노동을 할 수 있는 이주노동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지만, 불법취업에 내몰린 이주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엄격한 조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법의 테두리 바깥에 내모는 일이 없도록 노동부는 고용허가제 요건 완화 등 제도 개편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