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라 생각하고 공약 내보라

2025-04-28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022년 5월 발표한 ‘아름다운’ 국정 목표들이다. 다시 보니 하품만 나온다. 반듯한 나라, 역동적 경제, 행복한 나라는커녕 민간 기업 대신 한국은행이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이상한 나라가 됐고, 국민은 계엄이란 몰상식과 그 후 이어진 정국 불안이라는 느닷없는 불행과 씨름해야 했다.

공약 솎아내는 인수위 없는 대선

국정 운영 책임감 있는 후보라면

감세 등 무리한 공약은 자제해야

그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국민의힘 2차 경선 결과가 오늘 나오고 주말에는 최종 후보가 결정된다. 국힘을 넘어선 후보 단일화와 빅텐트 성사 가능성도 관심거리다. 주요 대선후보 간의 공약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에 꼭 짚을 게 있다. 월등하게 앞서 가는 후보건, 선두를 추격하는 후보건 새 정부가 인수위 없이 출범한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12월 대선이 끝나면 2월까지 60여 일간의 인수위를 거친다. 당선인의 국정 철학과 방향, 현실적인 제약 조건 등을 고려해 국정 과제를 추리고, 새 정부에서 일할 주요 인사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선거 캠프 출신의 전문가와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함께 일하며 실력과 성향을 확인한다. 선거 열기에 휩쓸려 나왔던 무리한 공약이 예산과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따져 현실에 맞게 다듬어지고 솎아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데 이런 인수위가 없으면 새 정부 정책을 구체화하고 실행 계획을 만들 시간이 없다. 선거공약의 현실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없는 거다. 정책 준비 과정이 부실해지면 취지는 좋지만 현실에서 삐걱대는 얼치기 정책이 쏟아진다. 국정 방향에 혼선이 빚어지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은 떨어진다. 인수위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했다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문 정부는 인수위 역할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맡겼지만 이미 새 정부가 일하고 있어 실행력을 가질 수 없었다.

대선후보 캠프는 인수위 부재라는 현실의 무게를 엄중하게 느껴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인수위처럼 책임감 있게 사고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공약을 내야 한다. 선거 승리를 넘어 향후 국정 성공을 염두에 둔다면 돈 많이 들어가는 장밋빛 공약은 섣불리 내놓기 힘들 것이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 후보가 발표한 공약 이행을 위한 비용은 5년간 각각 266조원, 300조원 이상이었다. 선거 캠프가 추계한 수치고, 지방 공약은 제외했음을 감안하면 실제 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대표 공약은 국정과제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공약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 보상은 그대로 1호 국정과제가 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59조원의 추경안을 내놨고 국회에서 62조원으로 통과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이었다. 373만 소상공인에게 손실보전금 23조원이 지급됐다. 국가 방역지침에 협조한 자영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물가 불안,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지원 규모를 현실적으로 조정했어야 했다. 나랏빚은 문재인 정부 5년간 409조원이 늘었고 건전재정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 3년간 205조원이 증가했다. 외평기금을 가져다 쓰는 편법까지 윤 정부가 쓴 점을 고려하면 도긴개긴이다.

현 정부에서 재정 여건이 나빠진 건 불황에 법인세수가 줄어든 데다 감세 영향이 컸다. 제대로 된 후보라면 이 판국에 표 얻겠다고 달콤한 감세 정책을 내놓기는 힘들 것이다. 예산이 많이 필요한 공약은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한다. 발을 뻗기 전에 누울 자리부터 봐야 한다. 인수위처럼 생각해야 하는 건 앞서가는 민주당 후보뿐 아니라 추격하는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비현실적인 공약을 남발하는 정당이 새 정부를 견제하는 힘 있는 야당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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