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번 아이언’. 어지간한 골프 마니아가 아니면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런 아이언도 있다.
지난 7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유현조의 무기는 3번 우드였다.
이 대회가 열리는 경기 이천시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정확한 샷으로 전략적인 공략을 하지 않으면 많은 타수를 잃기 십상이다. 올해 대회에서도 1·2라운드 합계 5오버파 선수들까지 컷을 통과했을 만큼 선수들이 많은 타수를 잃었다.
이런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을 공략한 유현조의 무기는 3번 우드다. 유현조는 지난해 파4와 파5 홀 14개 가운데 한 홀에서만 드라이버를 잡고 나머지는 주로 3번 우드로 티샷을 하면서 이 코스를 공략해 KLPGA 투어 첫 우승을 이뤄냈다.
이런 유현조에게 팬클럽 ‘해피캣’은 ‘3번 우드의 마법사’라는 글귀가 써있는 모자를 쓰고다니며 응원을 보냈다.
유현조는 올해도 드라이버는 라운드 당 네 번 정도만 쓰고 나머지 홀은 주로 3번 우드로 티샷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나흘 모두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한 유현조는 2위와 4타 차이로 여유 있게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처럼 까다로운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은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나 5번 또는 7번 우드로 티샷을 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를 조금 포기하는 대신 정확도를 높이려는 의도에서다.
드라이빙 아이언을 드라이버 대신 쓰는 경우도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페어웨이가 단단한 데다가 항아리 벙커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디오픈이 드라이버 대신 드라이빙 아이언이 많이 사용되는 무대다. 2006년 디오픈 정상에 오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당시 드라이버를 단 한 차례만 잡았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2014년 2번 아이언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디오픈 정상에 올랐다.
드라이빙 아이언은 보통 1번이나 2번 아이언을 말한다. 롱 아이언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요즘에는 4번 아이언까지 드라이빙 아이언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언은 로프트 각도가 낮기 때문에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면 다루기 어렵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아이언을 만들어 대회에 들고나간 선수가 있다. 왕년의 ‘장타왕’ 존 댈리(미국)다.
댈리는 1996년 5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켐퍼 오픈에 ‘0번 아이언’을 들고 나갔다. 아이언은 보통 1번부터 9번까지로 구성된다. 없는 아이언을 주문해서 만든 것이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댈리가 0번 아이언을 쓰게 된 이유는 성적 부진 때문이다. 댈리는 1995년 7월 디오픈에서 우승했지만 1996년에는 켐퍼 오픈 전까지 출전한 10번의 대회에서 5번이나 컷 탈락했고, ‘톱10’에는 한번도 들지 못했다.
이에 ‘0번 아이언’을 주문 제작해 켐퍼 오픈에 나섰다. 정규 아이언 가운데 로프트 각도가 가장 작은 1번 아이언의 로프트 각도는 14~16도다. 0번 아이언은 이보다 로프트 각도를 더 낮춘 아이언이다. 당시 기사를 보면 댈리의 0번 아이언 로프트 각도는 퍼터 보다도 작은 2도라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12~13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댈리는 당시 이 아이언으로 275~290야드를 날렸다. 현재 선수들과 비교하면 길어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1년 전인 1995년 댈리가 평균 289야드로 드라이브 거리 1위에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거리다. 댈리는 “1996년에 0번 아이언으로 PGA 투어에서 드라이브 거리 1위를 달렸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댈리는 당시 이 대회에서 공동 10위에 올라 그해 첫 ‘톱10’을 기록하면서 0번 아이언의 도움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그해 열린 공식 대회에서 ‘톱10’을 한 것은 그 대회가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