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는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 탈레스가 보석류인 호박을 닦을수록 오히려 먼지가 달라붙는 현상을 보고 '호박의 마법'이라고 부른 내용이 최초의 기록으로, 현재 '전자:electron' '전기:electricity'가 고대 그리스어로 호박을 뜻하는 'eletron'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발전에 있어 전기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 왔고,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이 이뤄지는 지금에 있어서 '호박의 마법'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와 전기
데이터센터의 존재는 '전기'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전기에 기반한 시설이다.
데이터센터의 구축 프로젝트는 전기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데이터센터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수단 중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것도 공급되는 전원의 이중화다.
데이터센터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로 사용되는 전력효율지수(PUE)의 경우도 결국은 데이터센터에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있어 소비하는 전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데이터센터에 대해 부정적 의미로 종종 사용하던 '전기 먹는 하마'라는 별칭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설은 맞지만, 그 어떤 전기 사용시설들보다 집약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필요한 엄청난 데이터 수요를 비효율적인 수많은 소규모 전산실을 활용해 처리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적은 전기를 소모하면서도 더 높은 안정성을 담보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데이터센터라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규모의 경제'를 고차원으로 실현하고 있는 설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
최근 챗GPT를 비롯해 다양한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도입되고, 산업에서나 연구활동에서도 AI를 활발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AI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라 함은 '데이터센터 중 AI와 관련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GPU등 고성능, 고집적 시설을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데이터센터'라는 정도로 개념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범용 서버를 운영하는 경우 랙당 5~10KW를 소비하는 구성을 사용하는 반면,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랙당 50~100KW 이상을 필요로 한다. 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0년 이내 200KW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할 만큼 높은 전력 요구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장비의 스팩을 기반으로 한 전력 요구사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측면에서도 높은 전력 소비를 하게 된다. 2024년 6월 미국 전력연구원(EPRI)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의 질의 요청당 전력소모는 2.9와트시(Wh)로 구글 검색을 할 경우 0.3Wh의 전력소모를 하는 것에 비해 10배의 전력을 소비한다고 한다.
즉 AI 데이터센터의 구축 확대 및 AI 서비스 발달에는 그만큼 더 많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외의 전력 상황과 이슈
글로벌 시장에서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전망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 및 서비스의 확산은 더욱 그 성장세를 가파르게 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약 415TWh 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다.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이 945TWh에 이르러 2024년 기준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해당 보고서에서도 송전 인프라에 상당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계획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최대 20%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점이다. 이는 이미 송전망으로 상당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은 이미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효율 관리 방안,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원전 지속 활용 방안 등 다양한 방안들을 적용 및 검토하고 있다.
◇국내의 전력 상황과 이슈
국내의 경우 2023년 산업부가 국내 전력 공급 및 수요지역의 불균형, 송전망 부족으로 인한 송전제약, 발전제약 등 전력 상황과 데이터센터의 예상 증가 수치를 기반으로 인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완화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확보에 한층 어려움이 더해진 상황이다.
국내 전력 생산과 소비 지역의 불균형은 국내의 산업 및 주거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과 발전소들이 주로 남동부 해안가에 몰려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된 구조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반대로 인해 중단 지연되고 있는 송전망을 확보해 발전여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단기적인 우선과제다.
그러나 전력망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에도 해결은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동해안 발전소들의 발전 제약 해결을 할 수 있는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 건설사업'의 경우 9년에 걸쳐 전 구간 주민합의가 이뤄졌으나, 마지막 변전소가 자리할 하남시의 인허가 지연으로 답보 상태에 있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생산지역으로 수요를 유치하거나, 전력생산지역의 전력요금을 싸게 해주는 전력요금차등제 도입 등이 필요한 과제다.
현재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시범운영 중인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를 들 수 있다.
2024년 전력계통영향평가에 대한 고시가 제정 중이지만, 기존 전력수전예정통지 제도와 비교할 때 그 내용은 목적과의 불합치성, 평가체계 및 항목의 부적정성 등으로 데이터센터 산업 발전에 있어 심각한 장애요소로 작동할 것으로 판단돼 최초 예정 고시 이후 아직도 정식 시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2024년 거의 1여년 간 신규로 전력을 받은 데이터센터가 한 곳도 없다고 해, 데이터센터 산업계에서 '잃어버린 1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시범운영 중인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가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향후 우리나라의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은 매우 어려워지고 결국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이처럼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고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50년에는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모두를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RE100) 재생에너지의 폭넓은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인지 살펴보아야겠다.
대한민국 공식전자정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신재생발전비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속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이 성장해 2023년 9.67%에 이르고 있으나, 이 수치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재생에너지 기준으로 주요 국가들의 1차에너지 대비 비율을 비교해 보면, 2023년 기준 독일(19.6%), 이탈리아(19.2%), 영국(14.8%), 프랑스(13.6%), 호주(9.8%), 미국(8.4%), 일본(7.8%), 한국(2.6%)로 우리나라의 달성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기준으로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데이터센터는 미래사회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고, 데이터센터와 전력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발전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은 늘어날 것은 분명한데 현재 상황으로는 충분한 준비를 못하고 있다. 이는 자칫 미래사회로의 전환이나 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기간을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사회 구성원의 바른 상황인식과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적 판단을 기반으로 그런 사회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의 구축과 운영에 필요한 전력 확보와 균형 있는 진흥과 규제를 통해 산업발전 및 경쟁력 확보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여러 경로로 AI 데이터센터와 관련된 방안과 사업들이 다뤄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새정부에서는 글로벌 시장보다 조금 늦은 것 같은 마음에 조바심을 내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을 차근 차근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강중협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회장 batkjh@kdcc.or.kr
〈필자〉강중협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장은 행정안전부 정부통합전산센터(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센터장을 비롯해 정보화전략실장을 역임하는 등 공공 정보기술(IT) 발전 한 축을 이끌며 헌신해 왔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장 취임 후 데이터센터 산업계 의견을 국회·정부 등에 전하며 산업 발전 기틀을 다지는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