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29명 모여 1년간 기록물 3787건 모아 정리
“국가기록청 만들어 시민 아카이빙 지속 지원해야”

지난해 12월3일 불법계엄 이후 수많은 일이 기록으로 남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 그리고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까지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언론 등이 기록했다.
이런 큰 사건만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일까. 시민들이 계엄 사태 이후 보고 듣고 겪은 ‘작은’ 일들은 어디에 기록됐을까. 다행히 소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민 29명이 만든 ‘1203 아카이브’는 12·3 불법계엄 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부터 윤 전 대통령 탄핵까지 국회·정당·집회·유튜브 영상·성명서 등을 아카이빙해왔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기록과 정보·문화 연구모임’이 “내란 세력에 맞선 사람들의 다양한 기록을 모아 민주 사회의 역사적 지표로 삼겠다”며 만들었다. 본업이 따로 있는 29명의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하는 사람)가 ‘가욋일’로 기록을 모았다. 3일까지 꼭 1년간 기록 총 3787건이 저장됐다. 아키비스트 들은 직접 집회·시민 활동에 참여해 집회 깃발, 시민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활동 뿐 아니라 보좌진, 취재진의 모습도 풍부하게 담았다. 지식인들의 성명서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만든 ‘밈’도 수집 범위에 들어갔다. 이 밖에 인터넷 공론장이던 시사 유튜브, 한국·해외 언론 보도 등도 수집했다.
‘1203 아카이브’를 총괄해 온 김태현씨(56)·박태선씨(37), 운영진 이재윤씨(30)·민현창씨(31)를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났다. 이들은 “정의로운 일을 했던 시민들의 ‘증거’를 남기는 일이었다”며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하던 시민들이 잘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카이브에는 정치적 콘텐츠를 전혀 올리지 않던 고양이 유튜버, 뜨개질 유튜버, K팝 팬 유튜버가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 영상을 올린 기록도 저장돼 있다. 김씨는 “일상적 콘텐츠를 다루던 유튜버의 일상이 ‘탄핵 집회’가 됐던 것”이라며 “정치를 정상화해야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차 계엄설’이 돌던 지난해 12월6일 서울 지하철 국회의사당역에서 시민들이 ‘국회를 지키겠다’며 밤을 새우던 모습도 있다. 이씨는 “김밥을 나눠주고, 담요를 덮고 추워하면서도 시민들은 자리를 지켰다”며 “아카이브를 돌이켜보면 비상계엄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로 인한 피해를 본 사람들,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이 직접 남긴 ‘12월3일의 기억’도 저장돼 있다. 지난 2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한 시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을 때는 12·3 당일 국회로 달려갔던 사람들이 댓글에 줄줄이 경험을 올렸다. “강원도 횡성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여의도로 차를 몰고 갔다” “통장 비밀번호와 ‘국회의사당에 다녀올게 여보, 아침 출근 잘해’라는 메모를 남겨두고 청주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갔다”는 등 댓글이 아카이브에 수집돼 있다. 박씨는 “시민 기록이 유독 많았던 것은 ‘전 국민’이 피해자였기 때문”이라며 “각자의 피해를 말하고, 회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 활동 기록을 담당한 민씨는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시민단체에 ‘박근혜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싸우냐’며 왜곡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그들의 활동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록을 남겼다”고 말했다. 박씨도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주체와 관점’에 따라 권력을 쥐여주는 일이라고 느낀다”며 “시민들의 행동을 기록하고, 역사적 지표로 삼겠다는 것 자체가 시민에게 권력을 주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기록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관은 ‘국회’ 뿐이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실 기록비서관으로 일하는 박씨와 이씨에 따르면, 국회 사무처는 계엄군이 비상계엄 당일 깼던 창문 등을 ‘미술품 수준’으로 현장 보존해 3일 공개했다. 계엄군이 두고 간 탄창, 각종 사진 등 기록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민주화운동사업회 등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관련 아카이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김씨는 “현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기록한 언론은 있지만, 이는 ‘공적인 기록’이 아니다”며 “시민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기록의 주인이 되려면 국가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기록을 남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기록청을 만들어서 시민들의 아카이빙 활동을 지속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1203 아카이브’에서도 서부지법 사태, 각 대학에서 있었던 시국선언과 이후 탄핵반대 집회 등을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봤다. 김씨는 “특히 대학 사회는 학생회가 1년 단위로 바뀌고, 학생들도 졸업하는 등 급격하게 변하는 특징이 있어 기록이 빠르게 소실되고 있다”며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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