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가인 ‘황촉규화(黃蜀葵花)’

2024-10-21

이영운, 시인·수필가

“오늘 아침에 핀 화려하고 커다란 황금빛 꽃입니다. 무슨 꽃일까요?” “부용 같아요. 아니 노란 무궁화인가?”

우리 집 화분에 피어난 꽃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더니 여러 답장이 도착했다. 여러 해 전이다. 서우봉 돌담길을 걸으면서 유난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무리를 마주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그 길을 걷게 됐다, 수 없이 매달린 씨앗 두어 개를 가져와 그 다음해 화분에 심었더니 아주 조그만 생명들이 발아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조금 자라자 큰 화분으로 옮겼다. 그후 다시 6개월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더니 그 아름다운 자태를 꽃으로 내보였다. 그런데 꽃은 딱 하루 피고 툭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게 빛나며 우아하고 고고했다.

감히 꽃 중의 꽃이라 이를만 했다. 바로 ‘황촉규(黃蜀葵)’라고도 하는 닥풀꽃이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닥풀은 원래 우리나라 산천에 무던히 많이 자라던 풀꽃에 속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청자에도 닥풀 문양이 새겨질 정도로 친숙한 꽃이었다.

보통 7월부터 시작해 10월까지 피고 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0일 이상 피는 꽃이 없다)’이 아니라 하루살이 꽃이다. 한 줄기에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달리지만 한 번에 하나의 꽃만 핀다. 순차적으로 개화하며 한 줄기에서 1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꽃이 피고 진다. 원래 미색이지만 햇빛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원색이 아닌 은은한 매력에 넋을 잃게 만든다.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엔 고고한 여인네의 우아한 품위가 느껴진다. 아쉬운 것은 꽃이 하루를 못 간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짧은 생명력이 보는 사람을 애닳게 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 올해는 파종이 늦었다.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그리됐다. 그냥 넘길까 하다 다시 파종했는데 발아하고 여섯 달의 정성을 마시고 며칠 전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요즘은 하루건너 피어난다. 닭발 모양의 잎을 달고 높이는 거의 3m에 이른다. 줄기 끝에 봉오리가 여러 개 매달려 있어 차례로 꽃을 피워낸다. 올해는 또 놀라운 일도 있었다. 닥풀은 원래 한해살이 꽃이다. 작년에 꽃을 본 화분의 지난 줄기들의 씨앗을 수확한 후에 윗부분만 잘라내고 방치하고 말았다. 그것이 거의 일 년이 됐다. 그런데 그 곳 줄기 사이에서 다시 싹이 나고 잎이 자라 꽃을 피운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도저히 모르겠다. 문헌에 의하면 한해 살이 풀이라는데 다시 자라서 꽃을 피우고 또 씨앗도 충실히 맺혔다. 그럼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그 꽃을 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방치해서 어떤 부활을 꿈꿔 볼 것인가!

올해도 우리 집 작은 정원의 화분들에는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호박 그리고 닥풀 등이 열심히 꽃을 피우고 충실한 결실을 가져다 줬다. 그들을 보고 가꾸는 소일로 70여 일의 열대야도 무던히 건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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