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한번 유포되면 영원한 삭제 없어""초기 삭제 중요…피해 영상물 확보하려 SNS 비밀대화방 잠입도"딥페이크 정교해지는데 직원 한명이 연평균 2만건 삭제
[※ 편집자 주 = 내달 17일부터 개정 성폭력방지법이 시행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상처를 지워주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 권한이 확대됩니다.
이에 센터를 찾는 피해자 규모 및 유형, 불법촬영물 삭제 과정, 지능화하는 범죄 수법에 대한 대책 등을 담은 기사 2꼭지를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박사방'·'N번방' 사건부터 전국 초중고교와 대학교에서 발견된 '지인능욕방', 미성년 성착취 범죄집단 '자경단 사건'까지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미성년부터 성인까지 모두를 타깃으로 한다.
한번 유포된 촬영물은 거듭 삭제해도 계속해서 재업로드된다.
'정신적 살인'과 다름없는 극악무도한 범죄지만 무한한 디지털 세상에서 성착취물,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박멸은커녕 증식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만난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종결'이 없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피해자 한 명의 영상물이 무한 증식한다.
한번 유포되면 영원한 삭제가 없다"며 "한 직원은 사막에서 모래 퍼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한국 디지털 성범죄 대응 시스템은 어디까지 왔을까.

◇ 지원 요청 피해자 연 1만명대 진입…"최대한 많이, 빠르게 삭제" 22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센터를 찾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지원한 피해자 수는 총 1만305명으로, 센터 개소 후 처음으로 1만명대에 진입했다.
센터는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속해 있다.
피해자 수는 2023년(8천983명)과 비교하면 15%, 센터가 설립됐던 2018년(1천315명)과 비교하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피해자들이 센터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촬영물 삭제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전체 지원 건수(33만2천341건) 중 90%(30만237건)가 '삭제 지원'이었다.
센터는 삭제 지원 외에도 상담 지원, 수사·법률 지원 연계, 의료 지원 연계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18년 센터가 개소할 때부터 근무한 박 팀장은 "저희는 사후 지원을 위한 센터인 만큼 최대한 많이, 빠르게 삭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가 검색했는데 촬영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 자체로도 엄청 안심한다"며 "눈에 보이는 것부터 빨리 삭제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기 삭제가 중요하다.
박 팀장은 "내부적으로 정한 골든타임은 3개월"이라며 "몇해 전 전체 사례를 분석해서 얻은 결론으로, 삭제를 빨리할수록 재유포 발생률이 낮고, 발생하더라도 재유포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라 센터는 최초 신고를 접수하면 해당 안건을 '긴급 삭제'로 분류해 3개월간 집중적으로 삭제 작업에 돌입한다.
3개월이 지난 뒤에는 추가 유포가 없는지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 과정에서 6개월간 재유포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후 모니터링'으로 분류한다.
만약 재유포가 포착되면 다시 긴급 삭제 업무를 반복한다.
박 팀장은 "가장 안타까운 건 2018년에 접수했는데 아직도 저희가 삭제 작업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골든타임을 놓친 결과다.

◇ 직원 한 명이 연평균 2만건 삭제…"딥페이크 너무 정교해져"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들의 피해 유형 중 합성·편집은 1천384건으로, 2023년(423건)보다 227% 증가했다.
이는 불법촬영(43%↑), 유포(6%↑) 등 여타 피해 유형의 증가율을 훌쩍 웃돈다.
박 팀장은 "최근에는 딥페이크 합성물이 너무 정교해졌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센터도 기술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 개소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과 체액 사진을 편집해 올리거나, 사진 위에 신상정보 자막을 얹는 등 단순한 합성 작업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합성 여부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딥페이크 판별에서 끝나지 않고, 딥페이크 합성물을 자동으로 끌어오는 크롤링(데이터 자동 탐색 및 수집 기술)까지 가능하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센터 예산과 인력이다.
현재 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정규직 33명·기간제 8명 등 총 41명으로, 이 중 18명이 삭제 지원에 투입되고 있다.
별도로 기술 고도화를 수행하는 직원이 없어, 삭제 지원팀이 직접 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3월 나라살림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직원 한명은 연간 7천건의 피해 사례를 지원하고, 연평균 2만451건의 불법촬영물을 삭제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기간제 직원을 8명 뽑을 수 있지만, 근로 조건상 지원자가 많지 않다"며 "기간제 8명이라도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다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는 바람을 밝혔다.

◇ 성인 사이트 운영자들과 싸우고, 비밀대화방 잠입도 서슴지 않아 삭제 업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성인 사이트 운영자를 상대하는 일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센터에서 삭제한 촬영물의 46.7%가 성인 사이트에서 유포된 것들이었다.
박 팀장은 "성인 사이트 대부분은 해외 서버를 사용하는데 '국내법을 듣지 않겠다'며 배 째라거나, 피해자 동의 없이 촬영된 촬영물이 맞는지 증명해보라고 하는 사이트 운영자들이 많다"며 "방금도 저희 팀원이 텔레그램으로 싸우는 걸 보고 왔다"며 씁쓸해했다.
삭제에 불응하는 사이트 운영자에 대응하기 위해 '불법성 증명 공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삭제를 요청하는 근거와 관련 법, 수사기관, 사건번호 등을 적어 통지하는 공문이다.
박 팀장은 "현재는 이 공문이 자리를 잘 잡아서 삭제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영상물을 확보해야 삭제 작업이 가능한 만큼 직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비밀대화방에 잠입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 팀장은 "팀원들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여성들인데 이들이 모여서 어떤 텔레그램 아이디를 써야 대화방 승인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말해야 촬영물을 살 것처럼 보일지 등을 고민한다"며 "촬영물 삭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winkite@yna.co.kr(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