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엄마 능욕, 선생님 능욕이 장난이라니"

2025-03-21

내달부터 불법촬영물 피해자 신상정보만 적혀도 게시글 삭제 "비동의 유포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계속 말하고 알려야""대부분 해외사이트에 유포돼 해외에 근거 법령을 만들어야"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다음달 17일부터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이 시행돼 디지털 성범죄 삭제 지원 범위가 '불법촬영물'에서 '피해자 신상정보'로 확대된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불법촬영물과 신상정보가 함께 유포돼야만 삭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신상정보만 포함된 경우에도 삭제가 가능해진다.

◇ "피해자 신상정보 삭제만으로 고통 덜 수 있어" 박성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팀장은 18일 이번 개정안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팀장에 따르면 불법촬영물에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토대로 한 키워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 승무원', '△△ 간호사'와 같이 직업 혹은 소속이 붙는 경우가 많으며 나이, 휴대전화 번호까지 함께 유통되기도 한다.

박 팀장은 "그렇게 신상정보가 노출된 상태에서 '현재 A 사이트에 ○○ 승무원 신작 개시'와 같은 게시글이라도 올라오면 피해자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영상을 시청했다며 외모 품평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최초 피해는 신상정보와 촬영물이 함께 유포되면서 발생하지만, 2·3차 피해는 신상정보만 있어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은 또한 불법촬영물 및 신상정보의 삭제 주체를 국가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로 확대했다.

지역 센터·상담소에 불법촬영물 삭제 권한이 주어져 피해자 지원을 위한 책임과 의무가 확대되는 것이다.

박 팀장은 "그동안 신상정보만 포함된 게시글은 삭제할 수 없어 어려움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센터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며 "현재 지역 센터들과 함께 신상정보를 어떻게, 어디까지 삭제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비동의 유포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계속 말하고 알려야" 박 팀장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결국 '인식' 얘기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으로 꼽은 것은 결국 비동의 유포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박 팀장은 "가끔은 어떻게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된 촬영물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지, 배우도 아닌 일반인인데 어떻게 이런 걸 유포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사자 동의를 받지 않고 유포하는 행위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계속 말하고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용화된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손쉽게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 만큼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이 지난해 수사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682명 중 10대가 548명으로 80%의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도 104명(16%)이나 됐다.

박 팀장은 "최근에는 청소년들도 지인 능욕을 넘어 엄마 능욕, 선생님 능욕 등 놀이 삼아 딥페이크 합성물을 올린다"며 "그렇게 장난삼아 올린 게 일파만파 퍼지고, 피해자에게는 평생 삭제되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인 능욕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지인의 얼굴에 음란물 등에 합성하는 행위다.

지난해 인하대를 비롯해 전국 각 지역·학교별로 세분화된 '지인 능욕방'이 발견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박 팀장은 "계속 얘기하다 보면 바뀐다.

예전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들도 있지 않나"라며 "오래 걸리겠지만 계속 목소리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 "성인 여성 피해자 지원 체계는 우리가 전 세계 선도"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전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박 팀장은 "국내 어떤 업체도 저희보다 고도화된 기술이나 삭제 지원 기법, 노하우를 가진 곳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피해가 의심되면 웬만하면 저희한테 바로 연락해주시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성인 여성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은 저희 센터가 세계적으로 매우 선도적"이라며 "센터 근무 초반에는 호주의 '이세이프티'(eSafety)를 모델링할 계획을 세웠으나, 8년차에 접어드니 이제는 우리가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호주 이세이프티는 온라인 안전 관련 정부 기관으로, 2017년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 보복성 사생활 촬영물)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박 팀장에 따르면 해외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에는 무관용 원칙하에 강경하게 대처하지만, 상대적으로 성인 여성 피해자를 지원하는 근거 법령은 미비한 편이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다양한 삭제 창구를 발굴하고, 국외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와 함께 삭제 지원을 위한 상시 협력 창구를 구축했고, 이달 중으로는 미국으로 기술 연수를 떠난다.

박 팀장은 "국내 피해자의 촬영물 대부분이 해외 사이트에 유포되는 만큼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에 근거 법령을 만들고, 삭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처음에는 저희가 배웠지만, 이제는 가르쳐줄 차례"라고 말했다.

winkit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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