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나는 붉은발슴새

2025-11-21

붉은발슴새(flesh-footed shearwater). 나는 바다를 오래 기억하는 새다. 수백 번 파도를 건너고, 열대의 바람을 따라 나는 이 섬으로 돌아온다. 태평양의 작은 섬 로드 하우(Lord Howe Island)는 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딴섬’ 중 하나로 꼽힌다. 에메랄드빛 바다, 깊은 숲, 우리 붉은발슴새들의 세계 최대 군락지. 이곳은 수천 년 동안 내 부모와 또 부모의 부모가 새끼를 키우던 자리였다. 나는 파도 위에 떠 있던 단단하고 반짝이던 그 조각들이 먹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먹이가 아니었다. 내 새끼의 작은 배는 금세 찼지만 끝내 소화되지 않았다. 때론 날카로운 조각이 위장을 긁고, 독성은 장기를 파괴했다. 내 아기 새는 이렇게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갔다.

해양 쓰레기 작업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아온 영국 사진가 맨디 바커는 지난 10여년간 과학자들과 협업하며 해양 플라스틱 오염을 가장 설득력 있게 시각화해온 작가다. 2019년, 그녀는 바닷새에게 미치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조사하던 연구진과 함께 이 섬을 찾았다. 어미는 번식을 마치고 이미 먼 바다로 떠났고, 어린 슴새들도 곧 첫 비행을 떠날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것은 플라스틱으로 배가 가득 차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해안에 쓰러져 있는 새끼들이었다. 새끼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은 바커는 “마치 범죄 현장을 목격한 듯했다”고 말한다. 그 충격은 결국 아기 슴새들이 맞이한 죽음의 고요함을 기록한 연작 ‘STILL(FFS)’로 이어졌다.

바커의 시리즈에서 아기 슴새들의 이미지는 푸른빛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이 섬세한 색의 변화는 결국 생명의 소멸을 따라가는 일종의 타임라인이다. 어미가 바다에서 물고 온 플라스틱 때문에 한 세대 전체가 굶어 죽는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비극을 둘러싼 것은 언제나 고요였다. 새들은 소리 없이 죽어갔고, 섬은 아무 일도 없던 듯 고요했으며, 우리는 그 죽음을 침묵 속에 방치해왔다. Still. 바다는 여전히 플라스틱으로 가득하고, 새들은 여전히 애처롭게 사라지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 가한 폭력을 돌아보게 하는 그녀의 작업은 그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더이상 ‘Still’로 두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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