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AI를 둘러싼 사회계약

2025-11-03

경북 경주에서 1일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는 기술 문명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게 한 상징적 무대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APEC 정상회의 두 번째 세션 모두발언을 통해 제시한 ‘글로벌 인공지능(AI) 기본사회’ 선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답한 ‘세계 AI 협력 조직’ 설립 구상은 다른 어법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AI 시대에 인류는 어떤 질서를, 어떤 사회 계약을 선택할 것인가.”

두 제안의 결은 분명 다르다. 시 주석의 구상은 AI를 국제 공공재로 규정하고 다자 규칙과 제도로 관리하자는 ‘AI 질서’의 언어다. 규범과 권한의 중심을 새로 세우려는 제도 설계가 핵심이다.

반면 이 대통령의 선언은 “AI를 사회적 기반 시설로 전환하자”는 방향을 제시한다. 전기·수도·교육처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프라로서의 AI, 인간의 존엄을 확장하는 사회적 장치로서의 AI다. 곧 ‘AI 기본사회’라는 가치의 언어다. 전자가 “누가 AI를 통제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후자는 “AI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대비는 경쟁의 구도가 아니라 문명적 선택의 좌표 축으로 읽어야 한다. 오늘의 AI는 산업 도구를 넘어 사회의 거울이 됐다. 초거대 연산과 데이터, 알고리즘을 쥔 소수가 ‘지능의 자본’을 누적하며 민주주의의 절차와 시장의 규칙, 개인의 선택지까지 재편하고 있다. ‘지능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기술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로 탈바꿈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계약의 출발점은 분배의 시혜가 아니라 공공성의 재구축이어야 한다.

그러나 비전만으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질서 없는 기본사회는 공허하고, 기본 없는 질서는 억압으로 흐르기 쉽다. 이 대통령의 ‘사회’와 시 주석의 ‘질서’는 충돌이 아니라 교차점이 있어야 한다. 국제 협력은 안전성 평가와 위험도 등급, 데이터 이동과 프라이버시, 반독점과 상호 운용성 같은 공통 규칙을 세우고 각국은 그 위에 권리와 돌봄, 지속 가능성의 목표를 얹어야 한다. 규칙과 가치의 균형, 이 중층 설계가 AI 시대의 문명 언어다.

한국은 그 설계의 시험장에 서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민주적 제도, 시민적 감수성을 갖춘 우리는 ‘AI 질서’와 ‘AI 기본사회’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대학·산업계가 연합한 글로벌 AI기본사회 이니셔티브, 알고리즘 투명성 기구, 시민 데이터 신탁, 클린에너지 통합형 데이터센터 표준, 취약 계층과 중소 기관을 위한 ‘국민 AI 바우처’ 같은 제도는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AI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공공 모델, 데이터, AI 사회 서비스를 글로벌 사우스와 공유해 ‘지능의 격차’를 줄이는 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결국 인류가 다시 써야 할 것은 두 개의 사회 계약이다. 국경 사이의 ‘AI 질서’와 인간과 지능 사이의 ‘AI 기본사회’다. 하나만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규칙은 권리를 위해 존재해야 하고 권리는 규칙을 통해 구현된다.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 능력을 증폭하는 공공 인프라가 되도록 질서 위에 기본을, 기본을 위해 질서를 세우는 일. 그 균형을 가장 먼저 구현하는 나라가 AI 시대 문명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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