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세계 경제는 과거 자유무역 질서를 전제로 작동하던 국면과는 다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흔히 ‘국가자본주의 2.0(State Capitalism 2.0)’으로 불리며, 단순한 보호무역주의의 회귀라기보다 국가가 자본의 배분, 기술 표준의 설정, 공급망 관리 등 핵심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기술주권과 경제안보를 관리하는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 경쟁을 거치며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핵심 기술 의존 리스크는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관리가 어렵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주요국들은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 개입의 방식과 범위를 재설계하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 및 경제안보 시대
G2, 거대 자본 이용한 산업 경쟁
150조 국민성장펀드의 역할 기대
규제·제도의 유연성이 성패 좌우
국가자본주의 2.0의 특징은 개입의 강도가 아니라 방식의 변화에 있다. 국가자본주의 1.0이 전후 발전국가 체제로서 프랑스의 국유화나 일본의 고도성장기 국영기업·정책금융처럼 국가가 직접 생산과 고용, 자본 축적을 주도했다면, 국가자본주의 2.0은 민간 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유지한 채 규제, 자본 정책, 보조금 조건 설계를 통해 시장의 작동 방향을 정책 목표에 맞게 유도한다. 마리아나 마주카토 런던대(UCL) 교수는 『기업가형 국가』와 『미션 이코노미』에서 이를 기술과 산업의 방향성 자체를 설정하는 미션 지향적 국가 개입으로 설명한다.
이 국면에서 미·중은 모두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기술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직접 자금을 대규모로 집행하기보다, 규칙과 조건을 통해 민간 자본의 흐름을 조율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법(CHIPS Act)의 ‘가드레일’ 조항이다.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제한함으로써,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자본의 이동 방향을 안보 목표에 정렬시킨다. 이러한 전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국 자본시장의 압도적인 규모가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의 벤처캐피털 투자 집행액은 약 28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만도 650조원 이상으로 보고된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국가의 직접적인 자본 동원 능력을 핵심 수단으로 삼는다.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전략은 인공지능, 첨단 반도체, 바이오, 양자 기술 등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의 질적 전환을 도모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다. 이 전략의 핵심 수단 중 하나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이른바 ‘빅펀드 3기’는 약 3440억 위안(약 72조원)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이전 단계와는 다른 규모와 속도로 투자가 집행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2월 10일 공식 출범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는 글로벌 산업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 수단임은 분명하다. 국민성장펀드는 민간 자본이 감내하기 어려운 장기·고위험 분야에서 마중물 역할을 하며, 국가 전략 산업에 대한 위험 분담을 통해 민간 투자를 유인하는 장치다. 다만 인구 구조와 재정 여력을 고려할 때 이와 유사한 규모의 정책이 반복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민성장펀드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 골든타임의 마지막 실탄에 가깝다. G2와 자본 규모로 경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성장펀드의 성패는 결국 이 자본이 어떤 규제 환경에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중국 바이오제약 산업의 성과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국은 2015년 바이오 강국 전략을 본격화하며 국무원이 발표한 ‘의약품·의료기기 심사·허가 제도 개혁에 관한 의견’을 마스터플랜으로 삼아 규제 체계를 전면 개혁했다.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심사 인력을 네 배로 확충해 2만 건에 달하던 신약 허가 적체를 불과 2년 만에 해소했다. 이러한 제도 변화의 성과는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된다. 2025년 5월 미국 화이자는 중국 3S바이오와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실험적 항암제의 글로벌 판권을 확보했다. 이를 포함해 올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대형 제약사 라이선싱 딜의 약 3분의 1이 중국 기업과 체결되는 등, 중국은 이미 신약 개발 능력에서 세계 2위의 혁신 생산국으로 도약했다.
결국 성패를 가르는 것은 자본의 규모뿐만 아니라 그 자본이 흐르는 ‘길’이다. 국민성장펀드가 혁신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이 흐르는 길, 즉 제도의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엘 모키어 교수가 통찰했듯, 장기적 성장의 핵심은 혁신을 수용하는 제도적 유연성과 기득권의 저항을 돌파하는 사회적 역량에 있다. 낡은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투입된 자본이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온전히 전환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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