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시

2025-01-16

아침밥 먹고 빨래 개서 옷장에 정리하고 빨아 놓은 빨래를 거실에 잘 털어 널었다. 빨래를 널거나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생각하면, 내가 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르헤스’의 시를 읽다가 시집을 배 위에 올려놓고 이불속에 누웠다. 방바닥의 따사로운 온기가 몸으로 전이 되어 왔다. 내 몸과 이불 속의 온도가 일치되는구나, 하면서 정신이 가물가물 스르르 잠이 들었다. 포근한 온기로 푹 잤다.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나니, 겨울이 겨울 같다. 몸이 환하게 개여 가뿐하였다. 밖에 나갔다. 하늘이 청명하였다. 정말 맑았다. 고개를 들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둘러보았다. 산 능선들이 선명하다. 눈부신 겨울 하늘이다. 오랜만에 본 하늘 같다.

강을 건넜다. 낙엽이 쌓여 있는 오솔길을 걸었다. 참나무 잎이 수북하다. 참나무 잎은 두껍고 미끌미끌하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바스락 소리가 듣기 좋다. 자꾸 뒤가 돌아보아진다. 강길인데, 어쩐지 깊은 숲속 길 같다. 물속에 잠긴 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번도 말을 해 본 것 같지 않은 물속 돌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자갈들이 밟히는 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타났다. 따뜻한 양지다. 흙 위에 낙엽들이 쌓여 폭신폭신하였다. 멧돼지들이 땅을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땅이 마치 서툰 사람의 괭이질 솜씨 같다. 든든하게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막강한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도 저렇게 삶에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들은 비겁하지도 않고 다른 나무를 속이지 않을 것 같다. 따로 무엇을 강하게 주장 하지도 남을 욕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다. 누구를 지저분하게 이기거나 누구에게 비굴하게 지지 않을 것 같다. 불의를 모를 것 같은 반듯하고 당당한 나무들 곁에 서 있으면 내가 졸아든다. 오래된 나무들은 아무 데나 서 있어도 넘볼 수 없는 고결한 인격을 갖춘 상상 속의 어떤 인물 같다.

내가 사는 마을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150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우리 마을에 사셨던 서춘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한다. 서춘 할아버지는 평생 홀로 사셔서 자손이 없다. 이 느티나무가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느티나무의 천년을 넘게 산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살아 숨 쉬는 나의 책이다. 나는 이 나무를 78년째 바라보는 중이고, 77년 동안이 나무 아래를 지나다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이 나무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금도 봄이 오면 까치가 집을 수리하고, 새잎이 피고 꾀꼬리가 날아와 운다. 여름밤이면 둥근달이 나무 위를 지나간다. 가을이면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이 강물에 떨어지고 겨울이면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이 쌓여 놀라운 마을 풍경을 그려준다. 이 느티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정부를 세워주는 나의 나라다. 날이면 날마다 지치지 않고 새로운 시를 써주는 놀라운 ‘시 나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게 인문이다. 보고 배우고 익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 사람을 귀하게 가꾸며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게 책이라면 내게 이만한 책이 없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씻고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서 보여 주는 이 책은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고, 책도 안 읽는다. 지금도 강 건너 큰 소나무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이 나무가 불러주는 시 한 편을 받아 적었다, ‘나무는 정면이 없다/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나무는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다르다/ 나무는 경계가 없어서 /자기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받아들여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되고/새가 날아 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된다/ 나무는/바람의, 눈송이들의, /새들의/詩다’ -졸시‘새들의 시’ 전문.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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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시 #느티나무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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