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열차는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브리지 건너 에머리빌에서 아침 일찍 뉴욕으로 출발했다.
항공기와 자동차에 밀렸지만 150여 년 연륜의 철도시스템은 여전히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륙횡단 열차는 1869년 완공됐다. 공식적으로 ‘태평양 철도(Pacific Railroad)’ 혹은 ‘육로(Overland Route)’라 불렸다.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사회와 경제 발전에 일대 전환점을 제공했다. 철도 완공으로 동부 연안에서 서부 연안 도시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에서 2주일로 줄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내다본 열차 차창 밖으로는 물안개 밑에서 바다 물결이 진저리를 쳐대고 있었다. 높은 건물의 꼭대기와 다리의 난간, 허리에 구름을 감은 산들이 안개 틈으로 들락날락 신비스러웠다.
샌프란시스코만 지역 특유의 아침 안개를 벗어나 머린 카운티로 접어들자 빛은 해변의 빼어난 정취들에 내려앉아 평화로움과 세련미를 선명하게 전해주었다.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맑고, 바다는 비취 빛깔로 깊었으며, 초록의 야산 기슭에는 모양을 낸 주택들이 관상수에 둘러싸여 오가는 선박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내륙으로 들어가 농축산학의 메카 데이비스와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 일대의 평원을 지날 때는 포도와 오렌지, 아보카도의 과수원, 채소밭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푸르렀다. 리노를 지나 네바다의 사막에 접어들자 빛은 표변했다. 황무지에 펼쳐진 모래와 돌, 바위산, 널브러진 나목들의 주검 위에 살기가 등등했다. 그 넓은 광야에 땡볕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물은 보이지 않았다.
척박한 땅 황량한 무덤 더미는 유타 주까지 이어졌다. 4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주상절리도 펄펄 끓는 고열에 의한 조형물이리라. ‘철도 건설 현장에서 희생된 유골들도 필경 저기에 묻혀 있겠지’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지시로 6년 동안 시공된 3000km에 달하는 대역사의 상처였다. 인디언 원주민들은 보호구역에 유폐되거나, 저항하다가 처형됐다. 당시 연방 정부는 청나라에서 유입된 2만여 명의 중국인 노무자들도 열악한 작업환경을 견디다 못해 수없이 스러졌다고 전해진다. 해머와 징으로만 화강암을 하루에 1피트씩 뚫어 16개의 터널도 팠다고 하니 그 고역이 애련하기가 그지없었다. 획기적인 철도 건설로 미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한 중국 노동자들은 거꾸로 피해자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공사가 마무리된 후 1870년대부터 미국에 남은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철도는 인종차별의 발현 시점이기도 했다.
솔트레이크 시티를 지나자 태양은 서쪽 바위산 너머로 잠자러 가면서 휘황찬란한 빛깔의 비단으로 온누리를 덮어주었다. 천지가 저렇게 아름답게 물들다니! 장엄한 송별 의식일까, 위로일까.
깜빡 든 잠에서 깨니 창밖이 훤했다. 로키산맥의 중턱을 내려가고 있었다. 울창한 교목들과 굽이굽이 휘도는 코로라도 강의 푸른 물결, 날아다니는 새들이 반가워 온몸에 활기가 솟았다. 빛의 바닷속에서 동물들은 마냥 자유로웠고, 나무들도 반짝이며 살랑거렸다.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와 앞으로 달려가는 세상이 그토록 고마울 줄이야.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