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아름다운 패배, 내 커리어에서 가장 시적인 경기였다.”
현재 터키 페네르바체 사령탑인 조제 무리뉴가 자신의 감독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애틋하게 회상한 경기는 2010년 4월 캄프 누에서 벌어진 인터 밀란과 바르셀로나 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이다. 당시 무리뉴는 “우리는 10명이었고, 그들은 세계 최고의 팀이었다”며 “우리는 심장으로, 영혼으로, 전부를 다해 막아냈다. 단순한 승리가 아닌, 나를 정의하는 전투였다”고 말했다.
당시 승부는 단순히 한 경기가 아니었다. 2년 전, 바르셀로나가 자신이 아닌 페프 과르디올라를 새 감독으로 택한 ‘거절’의 역사에 대한 응답이었고, 무리뉴가 ‘승리를 위해 미학을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BBC는 20일 “이렇게 거절하는 순간을 무리뉴 경력의 분기점”이라며 어둠의 군주로서 무리뉴를 해석했다.
2008년 여름, 바르셀로나는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경질하며 새 사령탑을 물색하고 있었다. 유력 후보 두 명. 하나는 클럽 전설적인 주장 출신 과르디올라, 다른 하나는 2004년 포르투로 챔피언스리그를 들어올리고,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던 무리뉴였다. 결과는 과르디올라였고 클럽 내부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감독 경험이 없는 유스팀 사령탑이 세계적 명장을 밀어낸 순간이었다. 당시 무리뉴는 절망했고, 동시에 이를 복수의 동력으로 바꿨다. BBC는 “축구를 ‘정복의 수단’으로 본 무리뉴의 철학은 이때 완성됐다”며 “공격 축구? 볼 점유? 화려한 패스워크? 이기기 위해서라면, 미학은 필요 없다는 냉혹한 현실주의가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2010년 4월, 인터 밀란은 4강 1차전에서 바르사를 3-1로 꺾었다. 2차전은 원정이었다. 그라운드에는 과르디올라의 전술이 깔려 있었고, 관중석에는 ‘Remuntada(역전)’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티아구 모타의 퇴장으로 전반 28분부터 10명이 싸워야 했다. 무리뉴는 “모든 걸 걸었다. 전술은 물론, 감정까지. 그날을 위해 평생 준비해온 것 같았다. 선수들은 불굴의 전사였고, 난 그들을 조직한 지휘관이었다”고 전했다. 바르사는 1-0 승리를 거뒀지만, 인터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무리뉴는 펄쩍펄쩍 뛰며 그라운드를 내달렸다. 바르셀로나가 자신을 외면한 그 경기장에서 그는 전 유럽을 침묵시켰다.
결승전에서 인터밀란은 루이스 판 할이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을 2-0으로 꺾었다. 포르투(2004년)에 이은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무리뉴는 우승 직후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기자회견도 없이 조용히 떠났다. 당시 무리뉴는 마르코 마테라치를 보고 울면서 껴안으며 “버스에 오르면, 밀라노로 돌아가면, 난 떠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쳤다”고 고백했다.
포르투 시절 공격수 베니 매카시는 “무리뉴는 우리 집안 사정까지 알고 싶어했다. 부모님이 계신지, 자라온 환경이 어떤지. 그런 지도자는 처음 봤다. 그와 함께라면 누구든 벽을 뚫고 달려들었다”고 회고했다. 하비에르 사네티는 “무리뉴는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가족을 만들었다”며 “선수들과 매주 아사도(아르헨티나식 바비큐)를 즐기며 신뢰를 쌓았고, 전장에서 함께 싸울 유대를 다졌다”고 말했다. 무리뉴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처럼 빅클럽은 다른 감독도 우승할 수 있다”며 “하지만 포르투와 인터에서 우승을 이룬 사람은 나뿐”이라고 말했다.
BBC는 “냉철한 현실주의, 전술의 대가, 인간적인 리더십, 조제 무리뉴는 단순한 우승 감독이 아니다”라며 “그는 상처를 연료 삼아 유럽을 정복한 ‘다크 로드(Dark Lord)’였고 그 의 서사는 여전히 전설이 됐다”고 전했다.
다크 로드는 영미권 판타지 문학이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어둠의 군주로 표현됐다. 권력자, 냉혹한 전략가, 카리스마와 공포 등이 느껴지는 어둠의 상징을 의미한다. 무리뉴는 정통성과 미학을 버리고, 승리만을 추구하는 실리주의자로 변모한 지도자였고 다크 로드라는 별명은 강력하고도 위험한 전술 마스터로서 무리뉴를 문학적 이미지로 표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