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는 조금 특별한 ‘공부방’이 있다. 세곡동에 사는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세곡동주민센터를 찾아 1 대 1 과외를 받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 장병들이다.
‘세곡청소년공부방’이 문을 연 지도 올해로 14년차에 접어들었다. 2012년 처음 문을 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공부방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오왕근 세곡나눔장학회 회장(72)은 국내 1위 타카제조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경기 광주 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오 회장은 이날도 회사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장모님이 불교신자인데 매번 기독병원에 시각장애인 치료비 후원을 하셨습니다. 본인 환갑·칠순 때도 ‘밥 한끼 먹고 치울 걸 뭐하러 돈을 쓰느냐’며 잔치에 쓸 돈을 전부 시각장애인 단체에 기부하셨어요.”장모님은 2012년에 93세로 별세했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약 3000만원이 남았다. 때마침 장학회를 넘겨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장모님이 남겨주신 3000만원이 장학회 종잣돈이 됐다.
나눔의 삶 사셨던 장모님 뜻 이어
장례비 남은 돈으로 13년 뒷받침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 자녀에
공군 장병들이 1 대 1 과외교사로
“베풀 줄 아는 어른들로 자라나길”
장학회는 제일 먼저 공부방을 열었다. 오 회장은 당시 세곡동에 있는 공군부대(제15특수임무비행단)를 찾아가 ‘돈이 없어 학원을 못 다니는 아이들에게 장병들이 재능기부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장소는 세곡동주민센터 강당을 제공받았다.
세곡동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방에 모였다. 매주 1회 2시간씩 공군장병들로부터 영어, 수학 등 1 대 1 과외를 받았다. 장병들은 단순한 과외교사를 넘어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했다.
장학회는 아이들의 학습교재를 비롯해 공부하며 함께 나눠먹을 빵과 우유 등 간식도 지원한다. 여태껏 오 회장은 단 한 번도 공부방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다. 그는 “가끔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고 돌아올 뿐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괜한 부담을 줘서 뭐하겠나”라고 말했다.
장학회의 활동은 공부방 운영에 그치지 않는다. 대치동의 유명 대입 컨설팅 업체와 협약을 맺고 매년 공부방 학생들을 상대로 ‘찾아가는 입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회당 50만~100만원에 달하는 고액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한다. 평소 맞벌이 등으로 바쁜 부모들도 입시컨설팅 날만큼은 꼭 아이와 함께 설명을 듣고 간다. 오 회장은 “어쩌면 공부방보다 더 인기가 많은 사업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도 지급한다. 고등학생에게는 100만원을, 대학생은 200만원을 준다. “신청서를 받습니다. 내 꿈을 실현하는 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 일종의 계획서를 쓰는 거죠.” 2015년 14명을 시작으로, 매년 많게는 68명의 세곡동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는다. 올해 42명을 포함해 지난 11년간 총 273명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회는 서울대 캠퍼스 방문을 비롯해 1박2일 역사·문화체험 여행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장학회를 함께 꾸려가는 회원은 약 120명이다. 회원 대부분이 세곡동 주민이자 오 회장의 지인들이다. 회비는 각자 사정에 따라 알아서 낸다. 모자라거나 부족한 비용이 있으면 오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다. 오 회장은 그러나 “세곡동 주민들이 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학생들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난 13년간 누구로부터도 감사인사나 편지 등을 받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굳이 인사를 받나요. 그저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이 받은 것처럼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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