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 밟으려 전세계서 찾아온다, 겨울의 지상낙원 어디?

2025-01-14

스키(또는 스노보드) 마니아라면 해외 원정의 로망을 품기 마련이다. 인공 눈을 뿌려 만든 딱딱한 설면이 아니라 뽀송뽀송한 파우더 눈이 쌓인 설원을 누비고 싶어한다. 슬로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숙소가 있고, 스키 마친 뒤 미식 체험과 온천욕까지 즐기는 곳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지난해 12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스키장을 다녀왔다. 바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니세코(二世古) 지역이다.

눈 10m 쌓이는 스키 천국

일본에는 약 450개 스키장이 있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만 120개에 달하는 스키장이 운영 중이다. 후라노(富良野)·루스츠(留寿都) 등 유명한 지역이 많지만 외국인에게는 니세코의 명성이 드높다. 1961년 해발 1308m의 안누푸리(安努富里) 산자락에 처음 스키장이 들어섰고, 이후 호주∙말레이시아 기업이 스키장을 인수한 뒤 세계적인 겨울 관광지로 거듭났다.

니세코의 최대 매력은 역시 눈이다. 홋카이도 남서쪽에 솟은 안누푸리산은 바다가 가까워 홋카이도 여느 지역보다 눈이 많이 내린다. 연평균 적설량은 9~10m로 11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린다. 올겨울 누적 적설량은 433㎝다(1월 14일 기준). 양보다 중요한 건 질이다. 니세코는 겨우내 건조한 눈이 내린다. 날마다 솜이불 같은 ‘파우더 눈’이 슬로프를 뒤덮는다.

일본인데도 스키장에 일본인은 드물다. 도리어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 호주나 눈이 오지 않는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온 스키어가 많다. 신기하게도 겨울 올림픽 개최지나 세계적인 스키장이 즐비한 스위스나 프랑스, 미국에서도 머나먼 니세코까지 찾아온다. 오로지 파우더 눈 때문이다.

스키 숍과 식당, 술집이 모여있는 니세코 타운은 일본이 맞나 싶은 분위기여서 얼떨떨했다. 정통 일식당은 드물었고, 영어 간판과 백인 종업원이 흔했다. 딱 이태원 같았다. 브라질에서 온 대학생 제프리는 “스키 숍에서 일하며 스키를 즐기는 중이다. 오로지 최상급 설질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

면적 21.91㎢에 달하는 니세코의 스키장은 4개 회사가 나눠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니세코 유나이티드’라 한다. 통합 리프트권을 사면 스키장 네 곳의 슬로프 61개를 모두 이용할 수 있었지만, 사흘간 가장 넓은 ‘그랜드 히라후(ヒラフ)’ 스키장 한 곳만 누비기도 쉽지 않았다.

활화산 바라보며 질주

니세코에서 10년째 스키를 가르치고 있는 ‘트루 니세코’ 최정화 대표와 스키를 탔다. 정설차로 눈을 다져 놓은 저지대에서 몸을 풀었다. 한국 스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곤돌라 타고 올라가 리프트로 갈아탄 뒤 정상부에 접근하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매서운 눈바람 탓에 시야가 탁했고, 슬로프는 울퉁불퉁했다. 초보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중급 코스는 강원도 평창 여느 스키장의 상급 코스보다 험난했다. 경사도가 수시로 변했고, 슬로프 폭도 들쭉날쭉했다. 그래도 부드러운 설질만큼은 일품이었다.

최 대표는 “눈이 더 쌓이면 작은 나무와 조릿대가 완전히 파묻혀 슬로프와 슬로프 사이를 누비며 진짜 파우더 스키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슬로프가 적응되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작나무와 너도밤나무 군락지를 스쳐 지나며 설국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종일 눈이 내려 맞은편 ‘요테이 산(羊蹄山)’이 안 보였는데, 해 질 무렵인 오후 4시께 구름이 살짝 걷혔다. 삼각뿔 모양의 활화산이 형체를 드러내니 스키어 모두 질주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니세코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 8시 30분. 스키장 문을 열자마자 정상부로 향했다. 밤새 쌓인 20㎝ 이상의 신설(新雪)을 질주하니 구름을 탄 손오공이 된 기분이었다. 와우! 파우파우(가루눈)!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용기를 내 슬로프에서 벗어났다. 허리까지 눈이 잠기는 곳도 있었고, 조금만 스키를 잘못 다루면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짜릿했다. 이게 바로 니세코의 맛이니까.

밤엔 온천 즐기고 와규 한입

니세코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호텔이 즐비하다. 이번에는 2013년 12월 개장한 ‘무와(Muwa) 니세코’ 호텔에 묵었다. 그랜드 히라후 슬로프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이다. 호텔을 나서면 바로 슬로프가 나오는 이른바 ‘스키 인 스키 아웃(Ski in Ski out)’ 호텔이다. 일부 객실은 로비를 거칠 필요도 없이 테라스에서 바로 슬로프로 직행할 수 있다.

무와는 소위 ‘미쉐린 호텔’로 통한다. 지난해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도입한 호텔 등급제에서 ‘1키(최고는 3키)’를 받았다. 로비층에는 레스토랑 ‘히토 바이 타쿠보’가 있다. 도쿄에서 미쉐린 1스타 식당을 운영하는 다이스케 타쿠보(田窪 大介) 셰프가 기획한 레스토랑이다. 장작불에 구운 와규(和牛) 맛이 돋보였다. 요테이 산을 조망하는 인피니티 온천도 호텔의 자랑이다. 차를 마시며 몸을 지지니 뭉친 근육이 싹 풀렸다. 호사스러운 ‘아프레 스키(스키를 마친 뒤 즐기는 시간)’를 누렸다.

세계 각지에서 부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까닭일까? 니세코는 설질뿐 아니라 물가도 ‘월드 클래스’다. 그랜드 히라후 타운 식당에서 7조각 스시 세트를 4000엔(약 3만7000원)에 사 먹었다. 요즘 한국인이 열광하는 일본 물가와 거리가 먼 가격이다. 그래서일까. 슬로프 중턱의 낡은 식당 ‘보요소(望羊荘)’에서 먹은 900엔짜리 우동 한 그릇이 각별했다. 신용카드를 안 받아서 1엔짜리 동전까지 탈탈 털어 계산해야 했지만 말이다.

여행정보

니세코 스키장은 삿포로(札幌) 신치토세(新千歳)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다. 대한항공·티웨이항공 등이 인천~삿포로 노선을 취항한다. 그랜드 히라후 스키장 종일권은 9500엔(약 8만8000원), 4개 스키장 통합권은 1만500엔. 스키 초보이거나 니세코가 처음이라면 스키 강사의 도움을 받는 게 안전하다. 무와 니세코 호텔 투숙객은 스키 강사와 함께하는 그룹 프로그램을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종일 2만1000엔(19만5000원), 반일 1만5000엔(14만원). 호텔 1층에 스키 대여점과 스키 강습 업체가 입점해 있다. 스노슈잉·양조장 방문 등 각종 체험도 호텔에서 예약해준다. 자세한 정보는 무와 니세코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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