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 이형진의 세상 쓸어 담기] 〈무소유〉를 소유하다

2025-08-22

화요일, 금요일은 내가 담당하는 지역의 재활용품 수거 날이다. 평소에 나는 1톤 포터를 운전하고 다니며 음식물 쓰레기를 주로 수거하는데, 재활용품 수거 날에는 큰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의 재활용품을 수거하기도 한다. 얼마 전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도중에 책이 들어있는 사과 상자를 발견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차를 정차시키고, 바로 상자 안에 들어있는 책을 훑기 시작했다. 책을 버리신 분이 불교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는지, 불교 관련 서적이 많았다. 잠시 후, 나는 살짝 흥분되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이 쓴 책 〈무소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귀한 책이 여기에 있다니!’

예전에 법정 스님이 쓴 책을 헌책방에서 여러 권 구매한 적이 있었기에, 절판된 법정 스님의 책이 꽤 고가에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무소유〉도 그 절판된 책 중 하나이기에 중고 책 가격이 본래의 몇 배 이상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이 책을 버린 분은 이 책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마음속으로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무소유〉를 소유하게 된 내가 만족스러웠다. 다시 자동차의 액셀을 밟으며 일을 시작했는데, 좀 전에 느낀 카타르시스가 갈증이 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소유〉를 소유하게 된 내가 불만족스러웠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나는 책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잊고 〈무소유〉란 책을 물질로 보고 있었다. 그 책을 발견하자마자 먼지가 묻은 책을 휴지와 물티슈로 여러 번 닦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책의 띠지까지 비교적 온전했기에 책의 상태는 꽤 좋았다. 나는 종이에 불과한 책을 도자기 다루듯 소중히 다루며 마치 도굴꾼이라도 된 것처럼 탐욕이 생겼다. 그 순간 내게 이미 그 책은 〈무소유〉란 책 제목과는 거리가 먼 ‘소유’가 되어 버렸다.

2023년 1월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나는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꽤 큰 돈이 되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집이 망하고 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파킨슨병과 뇌경색으로 투병하신 부모님을 오랜 기간 보살폈기에 나는 간간이 오늘만 살았다. 돈을 모을 여력 따위는 전혀 없었다. 가진 종교는 없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구절의 의미가 매번 가슴에 와닿는 삶을 살았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밴 나는 매월 꽤 큰 금액을 저축하고 있다(25년 동안 두 가지 일 이상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돈이 쌓이기 시작했고, 부모님을 보살피며 20년 넘게 오늘만 살던 나는 어느덧 내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여유가 생소했지만, 점점 적응되었다. 그런데 내일을 생각하니 역설적이게도 삶이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일을 생각하니 모레와 글피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내 미래가 점점 불안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에는 10년 넘게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며 점점 아프기 시작한 왼쪽 팔을 비롯한 육체적인 아픔과 불편함도 한몫했다.

‘주식을 해볼까? 금을 살까? 채권이나 가상화폐를 공부해 볼까? 작은 오피스텔을 사서 세를 받을까?’ 등등 내 머릿속에는 예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물질적 관념들이 가득 찼다. 부모님을 보살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물질적 욕망이 올라왔다. 얼마 전부터 미국 주식에 소액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관심 있는 우리나라 주식을 실시간으로 매일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는 내게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무소유〉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기른 스님은 난을 가꾸면서 산철(승가의 유행기)에도 나그넷길을 떠나지 못하고.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벽의 위쪽에 자그맣게 만든 창)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다. 난초를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그 뒤에 곧 잇따라) 생각하고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난초에 집착한 스님은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결심하며, 스님이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내 삶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갑자기 늘어난 내 자산과 그로 인한 욕심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지켜보던 친한 지인은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통장에 있는 돈, 주식, 부동산 등은 네 돈이 아니란다. 네가 쓰는 돈이 진짜 네 돈이다.” 돈에 전혀 얽매이지 않은 지인의 이 말은 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과거 법정 스님은 깨달음의 떨림을 ‘무소유’라는 단 세글자로 압축하여 이야기했다. 법정 스님의 그 ‘무소유’란 깨달음의 떨림이 내 삶에서 큰 울림이 되기를 기도한다. 〈무소유〉를 제대로 ‘소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형진 환경미화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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