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살리고 희생하다···의인의 경제학

2025-08-22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웹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만 소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없던가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읽을거리가 더해진다면 훨씬 더 재밌을 지 모릅니다. ‘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는 이야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경제인문학 콘텐츠입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과 따뜻한 빛 이론 

마츠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는 4050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영화다.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MBC TV에서 방영됐던 이 ‘만화영화’를 보려 아이들은 눈을 부비며 TV 앞에 앉았다.

철이가 영원한 기계몸을 갖기 위해 신비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를 타고 각종 모험을 벌인다는 <은하철도999>는 <천년여왕> <우주해적 캡틴 해록>으로 세계관이 이어지며 SF물의 신기원을 이뤘다. <은하철도999>의 모티프가 된 동화가 있다.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다.

<은하철도의 밤>은 겐지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34년 출간됐다. 군국주의와 애국주의가 득세하던 당시 제국주의 일본에서 자연과 생명존중을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간 이 작품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인공 조반니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소년이다. 고기를 잡으로 갔다는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반니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데, 조반니를 따뜻한 눈으로 봐주며 도와주는 친구가 한명 있다. 모범생이자 단짝친구인 캄파넬라다. 오늘밤은 마을의 은하축제가 있는 날. 역시나 오늘도 조반니는 혼자다. 조반니는 무리들과 어울리 못하고 홀로 언덕에서 드러눕는다.

“은하역 은하역”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어라, 열차 안에 있다. 옆자리는 친구 캄파넬라가 있다. 열차가 백조역에 정차하자 두 사람은 은하 강가 모래밭으로 나가는데 그곳에는 작은 불꽃이 타오르는 수정 모래알이 있다. 소의 조상이라 불리는 ‘보스’를 발굴하고 있는 학자를 만나고 새를 잡는 새잡이도 만난다.

독수리 정거장 즈음에서는 여섯살쯤 되는 사내아이와 열두살쯤되는 여자아이, 그리고 검은양복을 입은 키큰 청년이 객실칸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빙산에 부딪혀 배가 침몰해 이 열차로 오게됐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다.

고원지대의 협곡을 달리던 기차는 내리막으로 치닫고 바닥에서 쌍둥이별의 궁전을 만난다. 열차가 남십자성에 이르자 다시 조반니와 캄파넬라 둘만 남는다. 둘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의기투합하는데, 그때 홀연 캄파넬라가 사라진다.

그렇다. 조반니는 꿈을 꾼 것이었다. 잠에서 깬 조반니가 마을로 내려와보니 분위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강가에 모여수군데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말합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실종됐다”고.

이 아이는 누구였을까. 꿈 속에서 만났던 캄파넬라의 말에서 힌트가 있다. 캄파넬라는 불쑥 조반니에게 “엄마가 나를 용서해 주실까?”라고 물었다. 그러고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는 듯하다가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나 정말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할꺼야.”라고 말했다.

강가에서 실종된 아이는 캄파넬라였다. 친구들과 축제에 간 캄파넬라는 친구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한 뒤 변을 당한 것이다.

캄파넬라처럼 종종 우리는 타인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본다. 혹은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자주 본다. 고전경제학 혹은 주류경제은 이같은 행동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고전경제학은 ‘개인은 이기적인 존재여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정의한다. 여기에 타인의 효용은 고려되지 않는다. 오히려 람들은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기여를 받는다면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타인의 희생으로 사회가 더 좋아진다면 이는 고전경제학의 예측과 충돌한다.

하지만 이같은 이타적인 행위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 웜 글로 기빙(Warm glow giving)이론으로, 1990년 제임스 안드레오니(James Andreoni)가 제안했다. 이 이론은 국내에서는 흔히 ‘따뜻한 빛’ 이론으로 번역된다.

타인을 돕는 것, 비경제적일까

따뜻한 빛 이론은 사람들이 남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은 순수한 이타심만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부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느끼는 따뜻한 감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내가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이 나에게 만족감, 즉 효용을 준다는 것이다.

따뜻한 빛 이론은 타인의 효용과 나의 효용이 경쟁관계여서 타인의 효용이 커지면 내 효용이 줄어든다는 전통적 경제학 이론을 정면 반박한다. 캄파넬라가 ‘누구나 정말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할꺼야’라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것과 상통한다.

1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갖고 다닌다면 왠지 내가 지구를 위해 조금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든다. 투표를 하면 왠지 사회를 위해 해야할 일을 해야한 것 같다. 자선단체에 자원봉사를 하거나 매달 소액기부를 하면 왠지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기업들의 ESG활동도 따뜻한 빛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지역과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은 기업 조직원들이 자부심을 높이게 되고, 이는 기업에 대한 로열티로 이어질 수 있다.

따뜻한 빛 이론은 정부의 재정지원이 늘면 개인 기부가 감소한다는 논리를 반박한다. 개인이 기부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많던 적든 꾸준히 기부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경기가 좋든 나쁘든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빌게이츠는 워런 버핏 등과 함께 기부클럽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창설했다.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면 가입할 수 있는 모임인데 2024년 12월까지 전 세계 억만장자 244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명의 창업자가 이름을 올렸다. 빌게이츠는 AP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남은 재산 전부를 기부하는데 대해 “일종의 스릴이 있다”고 말했다. 기부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따뜻한 빛’이론과 많이 닮아있다.

피터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의 부를 창출하며 나아가 많은 사람의 후생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때 느끼는 뿌듯함, 어쩌면 기업인은 이때문에 창업과 경영이라는 괴롭고 힘든 가시밭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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